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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만년전의 비밀 ‘주상절리’가 지천에…연천은 ‘숨쉬는 지질공원’
육각형·오각형 등 기둥모양 ‘경이’
병풍같은 임진강 주상절리 ‘백미’



휴전선과 북한땅이 코앞인 경기도 연천은 ‘관광지’보다는 아직 ‘군사도시’의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6ㆍ25 동란때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만큼 격전이 벌어졌던 연천은, 수백년 전인 삼국시대에도 쟁탈전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가 담긴 유적지를 찾아가다보면 그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장관들이 여기저기 펼쳐진다. 바로 ‘주상절리(柱狀節理)다. 이는 잘려나간 토지의 단면 모양이 육각형, 오각형 등 다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는 절리를 말한다. 화산암 암맥이나 용암, 용결응회암 등에서 생긴다. 제주도 해안에는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가 대표적으로 이런 지형에 형성된 폭포이다.

주상절리 뿐 아니라 전곡리 구석기 유적 토층, 재인폭포 등이 산재한 연천지역은 포천, 강원도 철원 등과 함께 ‘한탄강 국가 지질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총 면적 1164.74㎢에 이르는 한탄강 국가지질공원 한반도의 허리에 위치해 있으면서 지질학적으로 한반도가 어떠한 과정을 겪어왔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인 셈이다.

연천은 그래서 땅 위보다 땅 아래에 더 많은 매력을 품고 있는 도시다.

▶임진강 주상절리와 차탄천 주상절리, 백의리층=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도감포)에서부터 북쪽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수 킬로미터에 걸쳐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높이 40m, 길이 1.5㎞에 달하는 수려한 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미산면 동이리 주상절리는 임진강 주상절리의 백미로 꼽힌다.

한탄강 유역에 협곡이 생기고 주상절리가 만들어진 과정을 알아보자. 50~12만년전쯤 북한의 강원 평강군 부근에 있는 오리산에서 수차례 화산폭발이 일어난다. 이때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 유로를 메우며 철원 포천 연천 파주까지 흘러갔고 이렇게 형성된 대지가 식으면서 3각~8각 기둥모양으로 굳어진다. 이 틈으로 비와 강물이 흘러들어가 깎여나가면서 협곡이 형성됐고 그 단면으로 주상절리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임진강주상절리<사진>는 임진적벽길이 지나는 구간으로 임진강변을 끼고 걷는 경관이 뛰어 나다. 과거에는 개성의 유명한 경치 8곳을 일컫는 ‘송도팔경’에 속하는 장단석벽이라 하여 그 경치가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특히 절벽 틈새에 자라난 돌단풍이 가을에 불게 물들면 그 모습이 장관이라 ‘적벽’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차탄천 주상절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선캠브리안기의 화강편마암에서부터 백악기의 습곡운동, 신생대 초기의 하천 운동으로 퇴적된 자갈퇴적층(백의리층), 신생대 말기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차탄천 용암협곡 주상절리 트레킹 코스는 연천읍에서 전곡읍까지 약 9.5㎞에 이르는 구간으로 용암 협곡의 주상절리를 감상하기에 좋다. 차탄천은 차탄천 주상절리는 다른 지역에 비하여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서 현무암층을 볼 수 있다.

▶삼국의 격전지에 터 잡은 ‘고구려 3 성’=한수 이북은 삼국시대부터 뺏고 빼앗기는 일이 반복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때문제 전투도 많았고, 지키려는 노력도 많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연천을 가로지르는 임진강과 한탄강 변에는 당포성, 호루고루, 은대리성 등 고구려의 성곽과 성터가 남아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성과 달리 이들 고구려 3성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했다는 것과, 원형이 아닌 삼각형의 터에 자리잡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당포성에 올라서면 ‘아, 이래서 여기에 성벽을 쌓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천혜의 요새라는 걸 느낄수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 지류가 만나는 지점의 절벽 위 삼각형 터 위에 만든 당포성 망루에서는 강을 건너오려는 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말을 타거나 걸어서 도강할 수 있을 만큼 수심이 얕은 길목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상대로서는 당포성의 고구려군 눈을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당포성의 입지조건과 형태 및 축성방법은 호로고루 및 은대리성과 매우 유사하다. 양주 방면에서 북진하는 적을 막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당포성은, 반대로 양주쪽으로 남하하려는 적을 봉쇄하는데도 안성맞춤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신라가 이 성을 보수해 계속 사용했다고 한다. 

연천=김성진 기자/withyj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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