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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혁신적(的)포용국가 vs 혁신적(敵)포용국가
지난달 26일 오전 마감 시간이 긴박하게 흘러갔다. 오전 신문 제작이 한창인 시간, 두 건의 대형 뉴스가 전해지면서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 지침이 예정된 가운데 삼성전자가 전격적으로 1분기 실적 악화라는 ‘고백’ 공시를 내놨다.

정부는 이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재정 확대 방향을 담은 ‘2020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확정했다. 문재인 정부 4년차를 맞아 정부는 복지 확대와 경기대응을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을 운용키로 했다. 이에 내년 예산은 500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2017년 400조원을 넘긴 지 3년 만이다. 매년 ‘슈퍼예산’의 연속이다. 이어 사상 초유의 분기 어닝 쇼크를 예상하는 삼성전자의 공시가 나왔다. 공시일은 1분기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글로벌 1위 기업 삼성전자조차도 예상 못할 만큼 반도체 업황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었다.

두 뉴스는 공교롭게도 현 정부의 새로운 국정 슬로건과 오버랩된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국가 어젠다로 천명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혁신성장을 이뤄가면서 동시에 국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포용적인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게 골자다. 쉽게 말해 성장과 복지ㆍ분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적극적인 재정 집행은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 가는 복지 지출에 방점이 찍혀있다. 포용의 실현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명실상부한 4차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산업이다. 혁신의 첨병이다.

문제는 두 영역의 이질성이다.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슬로건으로 두 영역을 하나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재정 확대의 포용은 있되, 혁신은 제자리걸음이다.

포용을 지향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현금 복지’는 상승 일로다. 올해 예산 편성 지침에서는 고교 무상교육과 한국형 실업부조 등이 포함됐다. 고용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실업자에게도 월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하는 실업부조에는 1조5000억원 이상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2학기부터 시행되는 고교 무상교육에도 내년에는 2조원 가량이 투입된다. 기초연금도 올해보다 1조7000억원 늘어난 16조7000억원을 배정한다. 지자체도 보조를 맞춘다. 경기도는 올해 31개 시ㆍ군과 함께 4962억원의 지역화폐를 발행키로 했다. 도내 거주 24세 청년에게 지역화폐로 연간 1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배당(1752억원)과 산후조리비 지원금(423억원) 등 정책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라 한다.

이에 반해 정부의 혁신 의지의 가늠자였던 카풀 서비스는 택시업계와 기사들의 거센 반발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 어정쩡한 타협안을 내놓으며 국회의 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인들은 이를 두고 택시 기사들의 반발을 포용(?) 하려다 빚어진 참극이라 평가한다. 기존 산업과의 공존과 타협만 강조하고 있는 정부와 ‘표심’에만 급급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를 보면 적어도 현 시점에서 포용과 혁신은 공존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포용은 혁신의 유인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다르지 않다. 혁신적(的) 포용국가라는 슬로건이 혁신적(敵) 포용국가로 변질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정순식 산업섹션 재계팀장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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