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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록체인은 글로벌 IT공룡에 대들 수 있는 해방구”
스타트업 창업자·대기업 CEO·투자사 CTO 등 다양한 경험…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의 ‘스타트업 스몰 석세스론’



세계적인 SNS 페이스북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장 먼저 넘어야 했던 관문은 미국 하버드 대학 학생의 사진과 정보가 담긴 디렉토리(일명 페이스북)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비록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가 재학 당시 해킹을 통해 학생 기록을 입수하긴 했지만, 이 디렉토리를 손에 넣지 못했다면 지금의 페이스북이 탄생할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시작한 검색 서비스를 들고 알타비스타, 야후, 익사이트 등 포털 업계를 주름잡던 기업들을 찾아가 기술 거래를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거액의 거래를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대안으로 창업을 택했고, 구글이라는 훨씬 더 큰 잭팟을 터뜨렸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일군 세계적인 명성과 막대한 부는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원대한 목표다. 하지만 한재선(47) 그라운드X 대표는 페이스북과 구글이 쌓은 지금의 업적보다 이들 기업이 초창기 밟았던 현실 속에 스타트업의 길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을 창업해 대기업과 인수계약을 성사시키고, 개발자 출신이면서 투자사에서 경험을 쌓고 현재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업을 총괄하는 스타트업 선배가 예비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진심’이다.

한 대표는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처음부터 제2의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너무 허황된 욕심을 갖지 말라고 당부한다”며 “현실적으로 넥스트 구글, 넥스트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큰 성공을 쫓는데 이 같은 목표의식보다 작은 성공을 거두는 게 훨씬 중요하다”며 “열심히 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작더라도 한단계 넘어서는 것은 굉장히 다른 얘기”라고 설명했다.

하버드생의 정보를 얻은 것이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창업에 앞서 거둔 작은 성공이고, 구글 공동 창업자가 포털 업체와 검색기술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창업이라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한 대표는 박사학위를 딴 것부터가 자신의 작은 성공이라고 소개했다. 한 대표는 “박사 학위를 받는 것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돌이켜보면 박사 학위를 받기 전후로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미래를 바라보는 눈 등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KAIST에서 전자전산학과 박사 학위를 딴 뒤 이를 발판으로 2007년 대용량 데이터 분산처리 업체 넥스알을 창업했다. 그리고 넥스알은 2010년 KT에 인수(60억원 이상)됐다. 스타트업을 창업해 기존 기업에 파는 이른바 ‘엑시트(Exit)’를 경험한 순간이었다.

한 대표는 “넥스알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직접 개발했는데 AWS처럼 막대한비용을 들여 클라우드센터를 구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국내 최초의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오픈하고 모바일앱 사용자들에게 제공했다”며 “사업 기획부터 구축, 출시까지 난관이 많았지만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작은 성공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KT에 넥스알이 인수되던 시기 별도로 투자유치를 기획 중이었는데 투자유치로 사업을 확장시키기보다는 KT에 인수돼 엑시트를 경험한 것이 한단계 도약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고 밝혔다. 

물론 한 대표에게도 시련의 시기는 있었다.

한 대표는 “박사과정 중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국내에는 없는 새로운 기업용 상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었다”며 “당시 회사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영업하는 바람에 고객 사이트에서 개발도 하고 오류를 잡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한 대표에게 있어 당시는 극복하기보다 사실상 버티면서 보낸 시간이었지만 B2B 시장의 다양한 측면을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경험했던 시기기도 했다.

KT라는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도 있었다.

넥스알이 KT에 인수된 뒤 한 대표는 2011~2014년 KT넥스알의 CEO(최고경영자)로 근무했다. 한 대표는 “KT넥스알에서 KT의 빅데이터 사업과 클라우드 사업의 기술적인 측면을 지원하는 일을 했는데 직접 넥스알을 운영할 때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였던 것이 KT에서는 쉽지 않았다”며 “본 사업과 관련없는 업무들도 많아지고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했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나와 맞지 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자신은 조금 더 거친 필드에서 뛰는 ‘선수체질’이라고 소개했다.

선수로서 다시 뛰기 위해 KT를 나왔고 그가 선택한 것은 스타트업 투자사였다. 그는 2014년 퓨처플레이라는 투자기업을 공동으로 창업하고 CTO(최고기술책임자)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 개발자로서 투자를 받던 입장에서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위치로 변신한 것이다.

투자자의 눈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면서 한 대표가 세운 또 하나의 지론이 생겼다. 한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의 사업가가 많이 겪는 문제 중 하나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일 위주로 하려는 것”이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미래 나타날 상황들과 방향성이 맞으면 성공할 수 있겠지만 경험 상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았다”며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 해야 하는 일을 찾아 이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접근해야 투자가 성사될 수 있다”며 예비 창업자들이 자기중심적 마인드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한 대표가 조언하는 것도 투자자 마인드였다. 한 대표는 “투자자 입장이 돼보니 처음부터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J커브처럼 초기에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특정 순간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투자자들이 바라는 속도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엔지니어도 투자자 마인드로 생각해 여러가지 시도를 지속 추구하면서 급성장기를 노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현장에서 좋은 스타트업을 계속 발굴하기보다는 카카오가 세운 블록체인 기업 그라운드X의 CEO로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본인이 잘 맞지 않는다는 대기업이었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카카오는 일전 경험했던 대기업의 문화와는 다른, 오히려 스타트업 문화와 유사해 그라운드X로 합류하게 됐다”며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분야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도 운영했고, 투자사까지 거치는 이력을 통해 다른 기술,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 대표 스스로 갖고 있는 ‘현실론’이 블록체인과도 일치했다.

한 대표는 “지금 시점에 AI(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로 구글과 아마존을 능가할 수 있다고 묻는다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답할 것”이라며 “반면 블록체인은 사실상 무주공산으로 페이스북이 조금씩 이 판에 들어오려고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기존 산업의 연장선 상에 있지 않아 글로벌 공룡들이 짜놓은 운동장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 대표는 블록체인이 ‘해볼만한 게임’이라고 판단했고 새로운 판에서 자신만의 또다른 ‘작은 성공(small success)’부터 도전한다는 각오다.

이 같은 가치관은 그가 평소 일하는 방식에도 녹아들어가 있다. 한 대표는 자신이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는다는 유형이라며 “모든 곳에 문제는 다 있고, 오히려 없는 것이 비정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가 이다”고 말했다. 또 “문제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것이 기업가 자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평일엔 주어진 일에 몰두하고 업무에 대한 고민은 주말에 몰아서 한다는 한 대표는 워커홀릭처럼 보였다. 그런 그도 무념무상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한 대표는 “가장 큰 취미는 등산인데 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과 같은 해외의 높은 산을 1~2주 등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넥스알 인수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미리 내려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산만 바라보는 상태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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