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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한결의 콘텐츠 저장소] 현대의 몸짓에 한국의 전통 춤사위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2016년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에서 파리 관객에게 신선함을 선사하며 7회 공연 내내 매진을 기록한 바 있는 무용작품 ‘시간의 나이’가 2019년 3월 15일~17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국립극장의 국립무용단과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Jose Montalvo)가 만나 탄생된 작품이다.

‘컨템포러리춤 작품을 본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거나 해석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한다. 그러나 ‘시간의 나이’는 무대에서 보이는 것 자체가 안무가의 의도이고 답이다. 때문에 뭔가를 이해하려 들면 실망스럽거나 도리어 머리가 아프다. 공연을 보는 관객은 무대에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고 느꼈을 때 안무가의 순수한 의도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세 몽탈보는 한국전통 춤에서 받은 영감을 복잡한 가공 없이 최대한 그대로 무대로 옮겨 놓았다. “기억은 유산이다. 그 유산은 우리가 다이빙할 때 도약대 역할을 한다. 나는 전통이라는 도약대에서 뛰어올라 오늘의 무용을 만들고 있다”는 조세 몽탈보의 말처럼, 작품에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명백했다.

각각의 장에서는 ‘기억’, ‘세계여행의 추억’, ‘포옹’의 소주제에 걸쳐 춤, 영상, 의상, 이미지, 음악을 통해 많은 상징들이 펼쳐지지만, 이 모두는 하나같이 안무자가 전통을 해체하고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안무방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공연 내내 함께한 영상은 과거의 회상과 전통의 흔적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비춰졌다. 색동저고리의 빛깔을 연상시키는 원색계열의 원피스 의상과 영상 속 전통의상의 대조와 교차, 무대 위의 현대적 의상을 입은 무용수와 전통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공존, 이러한 구도는 현재의 모습이 과거와 공존하고 있다는 안무가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것이다. 

국립무용단, ‘시간의 나이’ 공연장면 [국립극장 제공]

2장에서는 지구와 인류에 대한 사색으로 확장된다. 무대 뒤의 흰 벽 가득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의 다큐멘터리 ‘휴먼(Human)’의 일부 장면이 보여 지는데, 자전거를 타고 광활한 해변을 달리는 풍경, 영상 전체 펠리컨이 가득한 전경, 쓰레기 산을 헤매는 아이, 인파 가득한 파도풀 등 문명의 오염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통해 인류와 지구의 현재적 모습과 미래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라벨(Maurice Ravel)의 ‘볼레로(Bolero)’가 흐르는 가운데 군무를 등지고 한 여성무용수의 완숙된 즉흥적 춤이 시작된다. 그녀는 볼레로의 흐름을 타며 자연스럽게 추임새를 넣고 소리를 하는데, 관객의 집중도가 최고조에 달했다. 마치 군무를 지휘하듯 큰 무대를 아우르며 3장 전체를 끌고 간 그녀의 활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볼레로’와 어우러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이 장면은 ‘볼레로’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낌과 동시에 한국전통 춤 특유의 매력을 안겨주며 긴 여운을 남겼다.

한국전통 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춤 내면을 관통하고 있는 풍부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표현의 절제와 중후한 멋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과거 한국정서 특유의 한과 얼은 한국전통 춤 안에서 상당히 깊이 있으면서도 매우 자연스럽게 발산된다. 그러나 조세 몽탈보의 영감은 한국전통 춤사위에서 오는 선의 미적 감각과 흥 그리고 외형적 새로움과 특별함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춤을 애호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이 주입식의 기묘한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조세 몽탈보와 협업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전통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 아닌 옛것의 흔적이며, 새로움은 과거의 축적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안무자의 철학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국립무용단이 향후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고자 하는 지속적인 시도로써 더욱 새로운 작품을 선사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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