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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수사권 조정보다 중요한 것

  • 기사입력 2019-02-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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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인이 왜 고소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고소한 분에게 여쭤봐야 될 질문인 것 같은데요.”

작년에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았다. 기사를 쓴 것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2시간40분 정도 머물렀다. 저 평범한 문답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기도 하는 ‘조서’가 어떻게 작성되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소한 분에게 물어야 한다’는 내 답은 ‘대답하지 않겠다’로 기재됐다. ‘조서에 내가 말한대로 적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법조 출입 기자로 짧지 않은 시간을 일했지만, 막상 조사를 받으려니 부담이 됐다. 다행히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이 조언을 해주신 덕에 할 말은 대략 머릿속에 담고 나갔다. 하지만 조서 작성 방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어감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답이 쓰여지는 수준이었다. 처음엔 내가 말한대로 기재를 하지 않길래 일일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그렇게 하다간 조사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조서열람할 때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뒀다. 하지만 막상 조서를 읽을 때가 되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기소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사안으로 조사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공소장이 쓰여질 수 있는 혐의를 받았다면 진이 빠진 상태에서 조서를 고치는 힘겨운 작업을 했을 것이다.

말한대로 적지 않는다는 점 외에 조사를 받는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미리 준비된 질문이 순서대로 나오면, 나는 거기에 수동적으로 답할 뿐이었다. 질문 중에는 의도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되묻는다 해서 답을 주지는 않았다. ‘문답식 조서 관행’이라는 게 이런거였구나 느꼈다. 고소 내용이 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지 설명하려고 나름 논리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질문은 ‘왜 익명이 아닌 고소인의 실명을 기사에 노출했는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그렇지만 답을 하다 보면 미리 정해진 방향으로 조서가 작성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겪은 일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조사에선 영상녹화도 할 것이고, 또 어느 곳에선 피의자의 답을 먼저 들어주고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적는 경우도 있겠다. 하지만 ‘조서를 꾸민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는 알게 됐다. 이 경험 이후 공소장에 기재된 ‘피의자 진술’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해묵은 과제인데, 이렇다 할 진척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정부가 내놓은 조정안을 보면 원칙적으로 경찰이 1차적인 수사권을 갖는다. 다만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는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아마도 수사권을 어느 한 쪽이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고의 문제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초기 ‘문답식 조서 작성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루한 검경 수사권 조정논의보다, 형사 절차에서 피고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문 총장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검찰에 갈 일 없다’고 자신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소장 한 장이면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다. 돈을 떼여도 사기로 고소부터 하는 일이 흔하다. 남일이 아니다. 

좌영길 사회섹션 법조팀장 jyg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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