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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양을 줄이면 질은 올라간다
삼시세끼는 과연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식문화일까. 사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보통 하루 두 끼를 먹었다고 한다. 물론 19세기 중엽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농번기에 하루 세 끼를 먹고 나머지는 두 끼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하루 두 끼가 기본이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가 쓴 <하루하루가 잔치로세>라는 책에 의하면, 식사를 조석(朝夕)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고 넘겼다’는 뜻과 ‘한 끼 식사 중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에 먹는 간단한 음식’이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삼시세끼라는 식문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에 의하면 삼시세끼 식문화는 산업화의 생활패턴에 의해 정착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에 세 끼를 꼭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전 인류로 보면 100년 정도밖에 안된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경우는 50년 쯤 된 식문화라는 것.

식문화는 노동과 무관하지 않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사냥을 해 끼니를 해결하던 시대에는 하루 한 끼가 보통이었을 거라고 말한다. 농업이 주업이었던 시대에도 하루 두 끼를 먹는 게 보통이었다는 건, 그만큼 우리네 인류가 꽤 오랜 기간 ‘공복의 시대’를 살아왔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노동 강도가 높은 농번기에 세 끼를 먹기도 했다는 사실은 노동과 식문화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 몸이 대체로 적게 먹어도 견뎌낼 수 있게 적응하며 진화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건 지금의 도시인들이 갖고 있는 노동환경이다. 과연 우리는 삼시세끼를 먹어야할 만큼의 노동 강도를 겪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거의 대부분이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을 놀리는 일이 많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영양과잉상태’에 들어와 있다.

최근 에서는 지난 2013년에 다뤘던 ‘간헐적 단식’을 다시 다뤄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주로 다이어트에 관련된 ‘간헐적 단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식문화의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전 세계에서 연구되고 있는 ‘단식의 효과’를 소개했던 것. 그 효과는 살만 빠지는 게 아니라 건강이 증진되고 심지어 노화 예방이나 암세포 억제까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연구와 임상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적어도 이 단식이 갖는 가치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데도 무언가 더 채우고 축적하려는 욕망이 오히려 삶을 망치는 길이라는 것이다.

삼시세끼의 식문화는 주부들의 측면에서 보면 그 자체가 중대한 노동이기도 하다. 나영석 PD가 만든 <삼시세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 하루 세끼를 챙기는 노동이 만만찮다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리가 느린 출연자들은 한 끼를 먹고 나면 다음 끼를 바로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예능적인 웃음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삼시세끼는 밥만 해먹어도 하루가 후딱 지나가버릴 수 있는 노동의 양일 수 있다.

하루 두 끼의 식문화는 여러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영양 과잉된 현대인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더 채우려는 욕망을 덜기 위해서도, 또 그걸 챙기느라 소진되는 노동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추구될 가치가 있다는 것. 양을 줄일수록 삶의 질은 좋아질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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