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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부동산 공시가에 어른거리는 ‘조원동의 거위’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상 콜베르는 “예술적인 과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경구를 남겼다. 박근혜정부의 경제수석 조원동은 박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13년 8월 세법 개정에 착수하면서 콜베르의 조언을 따랐다. 당시 박근혜의 주문은 ‘증세없는 복지’였다. 조원동은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꿨다. 세율은 손을 안 댔지만 사실상 부자증세를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한 묘수였다. 그러나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시기에 졸지에 ‘거위’가 된 중산층과 영세상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의 세법개정은 ‘꼼수 증세’라는 몰매를 맞고 사흘만에 후퇴하고 말았다. 정책 방향이 옳아도 타이밍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문재인정부가 작금 밀어붙이고 있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는 가야할 방향이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것 처럼 “초고가 단독주택 가운데 (시세 대비 공시가격이) 30%밖에 안되는 주택도 있는 게 현실”일 정도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지역별, 가격별, 유형별로 천차만별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컸다. 아파트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60~70%대인 반면 거래가 뜸한 토지, 단독주택은 40~50% 선에 그쳤다. 고가 아파트나 고급 단독주택 밀집 지역일수록 현실화율이 낮았다. ‘세금폭탄’이란 아우성도 크지만 ‘30년 특혜를 바로잡는 과세 정상화’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조원동의 ‘거위 깃털’ 파문에서 보았듯이 가뜩이나 경기가 가라앉은 시기에 부동산 실거래가와의 격차를 단박에 좁히려다가는 또다른 형평성 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부를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감정평가사들에게 고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올해 공시지가를 전년대비 최대 100%까지 인상하도록 구두로만 지시해 편법 개입 논란을 불렀다. 이는 25일 공표될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의 공정성 시비를 불러올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가 지난달 전년 대비 최대 3배로 급등한 2019년 표준단독주택 공시 예정가격을 공개하자 강남·동작·마포·서초·성동·종로 등 서울시내 6개 구청이 이에 반발해 재조사를 요구한 것이 말해준다. 이 중 5개 구는 구청장이 여당 소속이다. 정부의 주택 보유세(종합부동산세 + 재산세) 증세 기조를 둘러싸고 여권 내에서도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준과 목표 등 공시가격로드맵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깜깜이’, ‘고무줄 잣대’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방향은 맞는데 속도와 파장을 살피지 않아 이 정부가 껴안으려했던 사회적 취약계층의 경제난을 되려 가중시킨 최저임금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공시가격은 건강보험료 산정, 기초연금 지급 등 60여 개 의 지표로도 활용된다. 수년 전부터 땅값·집값이 치솟은 제주도에서는 공시가격 급등으로 기초연금 신청자의 42%가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소득 없이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고령층은 체감 고통지수가 커진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가 대부분의 국민에겐 거위의 깃털을 뽑는 수준이라고 항변하지만 당사자는 살점이 뜯기는 아픔이 될 수 있음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문호진 소비자경제섹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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