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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간 장벽·사회내 칸막이 높아만 간다
난민·실직·환경오염 등 불안요인 산재
유럽, 충격 흡수할 완충장치 있지만…
‘중산층 실종’ 신흥국 언제 터질지 몰라
터키·중국·멕시코·인도 등 꼼꼼히 분석
신기술·교육 투자…부패와 전쟁 주문도

“앞으로 우리 사회를 좌우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 신냉전, 유럽의 미래, 사이버 세계의 국제적 갈등 격화가 아니라 ‘병신취급’ 당하지 않으려는 패자들의 노력과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승자들의 노력이다. 미국과 유럽뿐 만아니라 개발도상국 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대립할 것이다.”(‘우리 대 그들’에서) [연합뉴스]

언뜻 보기에 프레임 전쟁을 뜻하는 듯한 ‘우리 대 그들’이란 제목과 달리 책은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저자의 깊은 통찰에 책을 다잡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동요와 이해하기 어려운 기류들의 근본 원인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점령부터 아랍의 봄과 겨울,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등 굵직한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저자가 끌어낸 건 다름아닌 불안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화의 결과를 목도한 세계 시민들은 더 나아지지 않는 삶, 실직, 거세게 유입되는 이방인,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폭력과 테러로 이젠 국가가 이런 위험들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의구심에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에 따른 급속한 기술발전은 빈부 격차를 더 벌여놓을 공산이 커졌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 했던 일자리들이 신기술의 등장으로 사라지면서 가지지 못한 이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 위험 연구가인 이안 브레머는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이 불안의 실체를 심도깊게 파헤친다. ‘우리 대 그들’(더퀘스트)에서 그가 열거한 불안의 요소들은 다양하다. 일자리 불안감과 함께 인종, 민족, 언어, 종교적인 문화적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환경오염에 대한 공포도 일대 혁명에 가까운 사태로 발전할 수 있는 불안요인으로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대 그들’의 대립은 국민 대 정부의 대립 혹은 부자 대 빈자의 대치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갈등과 충격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는 각국의 역량에 달려있다. 문제는 개발도상국이다. 제도와 시스템을 갖춘 유럽은 완충지대를 갖고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에게 더욱 나쁜 소식은 더이상 과거의 성공방식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래 성공한 신흥경제국은 일정한 패턴으로 발전양상을 보여왔다. 즉 가난한 시골에서 도시로의 이동, 저임금 노동, 제조업의 증가, 기술혁신, 생산성향상, 중산층 탄생이라는 성공공식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이런 선순환시스템이 돌지 않는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저임금 노동의 매력이 떨어져 중산층 소비자로 발돋움하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기존의 것과 근본적으로 달라 21세기형 직업에 요구되는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개발도상국 젊은이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치환경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21세기 세계경제를 흔들어놓을 각 국의 안정성과 불안요인을 하나하나 꼽는다. 남아프리아공화국, 나이지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멕시코, 베네수엘라, 터키, 러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국은 전세계 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저자는 불어닥치는 폭풍에 버텨내려면 신흥국은 무엇보다 신기술개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아부터 고등교육까지 국민을 훈련시켜야 한다. 이런 탄탄한 교육시스템과 함께 불평등 해소,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가속화하는 기술변화가 전 세계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에 따라 각국은 점점 더 장벽을 쌓게 될 것으로 저자는 내다본다. 일자리와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호주의는 더 강해지고, 정보와 정치적으로 파급력이 있는 생각이 유통되는 걸 막는 더 많은 제약이 생겨날 것이란 전망이다. 사람의 이동을 막는 신종장벽, 국경 밖의 그들을 차단하기, 같은 사회 안의 사람들까지 서로 분리시키는 장벽 등이다.

저자는 포퓰리스트 정치인, 국수주의자, 폐쇄주의자를 비난하는 대신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즉 사회계약 전반에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 목표는 불평등 해소다. 조세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국민이 경쟁력을 갖추고 성공할 수 있도록 대비시키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사회계약을 재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젊은이 중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명 중 1명이 채 안된다는 통계가 있다. 현재 상황이 개선될 수만 있다면 독재마저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안한 시대에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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