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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변기’를 만나다
평범함도 예술작품…‘개념미술’의 원조
국립현대미술관서 ‘마르셸 뒤샹’ 회고전
‘화가의 삶’ ‘에로즈 셀라비’ 등 4개섹션
‘자전거 바퀴’ ‘병걸이’ 등 150여점 전시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국내 첫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ㆍ2전시실에서 열린다. 뒤샹의 기념비적 작품인 ‘샘’,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No.2)’ 등 주요작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사진은 전시전경.[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변기가 드디어 한국에 왔다.

현대미술을 어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개념미술’을 탄생시킨 바로 그 소변기,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샘’이다.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셸 뒤샹의 국내 첫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박위진) 서울 1ㆍ2전시실에서 열린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로, 회화, 드로잉, 사진, 설치작, 아카이브 등 150여점이 나왔다. ‘샘’과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No.2)’등 뒤샹의 주요작이 포함돼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규모에 걸맞는 제대로 된 전시다.

전시는 ‘화가의 삶’,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에로즈 셀라비’, ‘우리 욕망의 여인’ 등 크게 4개 섹션으로 나뉜다. 작업 변천사를 연대기순으로 만난다. ‘레디메이드’로 온 세상을 떠들석 하게 만들고, 여성 자아인 ‘에로즈 셀라비’로 활동보다 더 눈에 띄는 건 바로 ‘화가’ 뒤샹이다.

1부인 ‘화가의 삶’에선 10~20대 뒤샹의 회화가 대거 나왔다. 고전적 페인팅부터 인상주의, 큐비즘을 실험했던 작품들은 뒤샹의 화가로 진면목을 보여준다. 뒤샹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는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No.2)’도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191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데 쟁데팡당에 출품했으나 위원회에서 뒤샹에게 몇 부분을 수정할 것을 요청, 뒤샹이 거둬들인 작품이다. 이듬해 뉴욕 아모리쇼에서 선보여, 논란의 중심에 서며 미국 관객에게 현대미술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한다. 뒤샹은 이 전시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2부다. ‘회화적 기법을 모두 마스터 한 뒤, 예술가로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한 천재성이 도드라진다.

레디메이드 연작인 ’자전거 바퀴‘, ‘샘’, ‘병걸이’가 나란히 전시됐다.

평범한 기성품도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을 천명한 개념미술의 원조들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샘’은 1950년 만들어진 재제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실물크기 재제작품 중 가장 초기작업이며, 뉴욕 전시를 위해 파리 벼룩시장에서 구입해 사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리지널 격인 1917년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했던 ‘샘’은 존재하지 않는다. 뒤샹 본인이 예술작품의 희소성ㆍ오리지널리티에 무게를 두지 않았고, ‘더 많은 재제작품이 나올수록 작품가격은 내려가고, 작가가 제안한 개념은 더욱 뚜렸해진다’고 생각했기에 초기 레디메이드들은 버려지거나 사라졌다.

이후 3부에선 1920~30년대 ‘마르셀 뒤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에로스 셀라비(Rrose Selavy)’라는 여성 자아로 자신을 위장하며 성적 정체성을 허물었던 작업들, 4부에선 마지막 작업으로 알려진 ‘에탕 도네’를 제작하며 남긴 스터디 작품이 공개된다. 뒤샹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는 ‘에탕 도네’와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는 작품 특성상 이동이 어려워 이번 전시에선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됐다.

모든 관습을 깨려고 했던 예술가의 노력은 반만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다. 뒤샹은 19세기에 오리지널리티를 부정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여전히 오리지널리티에 가장 가까운 작업을 찾는다.

작품의 미니어처 복제판을 담은 이동식 미술관을 300여개 제작해 예술의 희소성에 대해 급진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제는 그 300여개에 대한 희소성이 더 커져버렸다. 그럼에도 뒤샹의 업적이 조명받는 이유는 하나다. 그가 없었다면 현대미술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기에.

티모시 럽 필라델피아 미술관 관장은 “뒤샹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이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가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라는덴 이의가 없다. 동시대 젊은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가”라며 “뒤샹은 자신이 사용하는 기술, 재료, 작품 등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작업했다. 그런 과정을 직접 보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 관객에게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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