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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
“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Tempus est optimus iudex)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사법정책연구원 주최 행사에서 인용한 라틴어 속담이 눈에 띄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시간을 앞서가는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며 언급한 문장이다.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출신의 한동일은 자신의 베스트셀러 책 ‘라틴어 수업’을 통해 “이 속담은 ‘시간이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를 줄여서 말한 것”이라고 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가운데는 외적인 요인도 많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뿌려놓은 태도의 씨앗들 때문인 경우가 더 많은 것같습니다. (중략) 그때 우리는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제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뿌린 씨앗을 생각해보게 되겠지요. 그때 시간은 진정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 될 것입니다.”(p129)

연말이 되니 지난 1년간 내가 했던 말과 행동, 성과와 과오 등 내 흔적들을 ‘시간의 재판관’에게 맡겨보고 싶은 심정이다. 한 친구가 “인생은 더하기와 빼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얘기도 이맘때가 되니 마음에 무겁게 꽂힌다. 나는 올해 더하기와 빼기를 잘 했나. 더해야 할 것을 빼고, 빼야 할 것을 더하지 않았는지 곰곰 생각해 본다.

자연스럽게 정치 쪽으로 덧·뺄셈 수식을 들이댄다. 문재인 정부의 2018년은 어땠을까. 올 1월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다시 꺼내봤다. “지난 일 년, 저는 평범함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꼈습니다”로 시작해 “평범한 삶이 민주주의를 키우고 평범한 삶이 더 좋아지는 한 해를 만들어보겠습니다”로 끝나는 신년사에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의 국정운영 의지를 빼곡히 담았다. 국민(64회)과 삶(18회) 등 의례적 용어를 빼면 평화(16회)와 일자리(13회), 한반도(10회), 이 세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평화’와 ‘한반도’. 지난 1년간 ‘한반도 운전자’로서 문 대통령의 성적표는 최고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 10년 넘게 이뤄지지 않았던 남북정상회담을 평양과 판문점을 오가며 세차례나 성사시켰고,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다.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에 놓이긴 했지만,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 안에서 2018년은 역사적 사변의 연속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 분야에선 낮은 점수가 불가피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주 52시간 근로단축 시행으로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신음이 터져나왔다. 높아진 인건비는 결국 있던 일자리마저 없애면서 최악의 고용한파를 불러왔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지만 실업률은 더 높아졌고, 양극화 해소를 주창했지만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경제 성적표와 함께 대통령 지지율도 40%대까지 내려앉았다. 불과 1년7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국민은 조용히 ‘평가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집권 3년차는 문 대통령에게 더욱 냉혹한 시간이 될 것이다. 정부는 민심의 살갗에 확실히 닿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경제정책에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로 귀결된다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국정철학의 의미가 시간의 재판 앞에서 퇴색할지도 모르겠다.

anju1015@herla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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