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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권선언 70주년] 물 건너간 ‘사형 집행 중단 선언’…왜 어렵나
-文 대통령, 기념식사서 사형제 중단 관련 언급 無
-사형제 찬성 여론 의식한 듯…국민 69% “유지해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사형 집행을 중단하는 ‘사형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이라는 당초 관측이 어긋나면서 사형제 폐지 움직임은 당분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2018년 인권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사형 집행 중단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6월 문 대통령이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사형제 집행 중단 공식 선언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사형집행 중단을 연내에 선언하는 문제는 국가인권위가 공식적으로 건의할 때 판단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왔지만, 문 대통령이 사형 집행 중단을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은 계속 제기되어 왔다.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사형제도는 흉악범죄 억제 효과가 없다”며 사형 집행 중단을 공약사항 중 하나로 내세운데다, 지난해 12월, 6년 만에 이뤄진 인권위 특별보고에서도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같은 사안의 경우 국제 인권원칙에 따른 기준과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을 공식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사형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1997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약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 국내 교정시설에 수용된 미집행 사형수는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강호순, 유영철 등을 포함해 61명이다.

문 대통령이 사형 중단 선언을 하지 않은 배경에는 사형제에 대한 국민 여론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형제를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8월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사형제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69%가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고. ‘사형제를 폐해야 한다’는 의견은 22%에 불과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이유로는 ‘강력한 처벌 필요ㆍ죗값 치러야 함’이 22%로 가장 높았고, ‘흉악범은 사형 필요ㆍ살려둘 이유 없음’이 19%, ‘경각심 필요ㆍ두려움을 줘야 함’이 12%로 그 뒤를 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사형제 관련 청원이 1000여 건이 넘는 가운데 사형제를 부활시켜 달라는 청원이 주를 이룬다. 한 청원인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빼앗아 놓고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남의 인권을 침해할 만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사형시켜 달라”며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런 자들을 먹여살리고 싶진 않다. 차라리 그 돈을 피해자들에게 지원해 주는 게 훨씬 가치 있고 나은 행동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2005년 4월엔 국회에, 2009년엔 헌법재판소에 각각 사형제 폐지가 헌법과 국제 인권규범에 맞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엔 ‘사형 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권고 안건을 의결하면서 사형제 폐지를 촉구해왔다.

일부 법조계에서도 사형제 폐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0년 5대4의 의견으로 사형 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당시 김종대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사형 제도를 통해 일반 예방의 목적이 달성되는지도 불확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형제 논란이 워낙 뜨거운 탓에 국회에서도 사형제 폐지 관련 법안이 단 한 번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사형제 중단 여부는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다수결이 원하는 방향이 파악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심도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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