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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고지도에서 김정호 삶을 엮어내고…‘독도’ 호적을 밝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시대의 중요한 모든 지식자료를 수집· 정리· 영구 보존하는 곳입니다. 망라적 수집이죠. 다른 데서 찾을 수 없는 자료는 여기 다 있습니다. 일반 공공도서관은 이용자가 많이 찾는 책을 갖다 놓지만 여긴 수집에 집중해야 합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과거 기록은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는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국립중앙도서관·국가기록원 통합론’ 주장


“김정호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지도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이자 혁신가죠. 요즘 세상에 더 주목 받아야 할 사람 아닌가요?”

‘고지도 전문가’ 이기봉(52)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김정호 전도사’로 통한다. 김정호는 지금으로 치면, 지도제작자이자 지도전문출판인이다. 또한 국토 정보를 체계화해 이용하기 편하도록 만든 지리학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에 관한 기록은 A4용지 한 장 정도다. 평민의 삶은 기록되지않았기 때문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기록이 없어도 “작품을 따라가 보면 그의 삶이 보인다”고 한다. 그는 김정호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그래도 미진해 그의 위대한 삶을 오롯이 드러낼 책을 1년 정도 공들여 써낼 참이다.

그에게 김정호는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대동여지도’ 같은 전국지도는 물론 사람들이 휴대하기 좋은 낱장 지도도 여러 종 만들고, 수요가 많지 않은 지리지도 끊임없이 개정판을 냈다. 전통사회에서 지도는 인기상품이었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종이가 귀해 사갈 사람이 종이를 가져와 주문했다. 그 중 한양을 그린 ‘도성도’는 양반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과거 보러가는 선비. 전국 팔도의 물품을 다루는 장사꾼들에게도 지도는 인기였다. 그런데 김정호가 지도를 팔아 부를 축적했단 소리는 없다. 번 돈을 오로지 지도 제작에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실에서 만난 이 학예연구사는 책상 위에 지도 한 장을 펼쳤다. ‘남원부지도’다. 직접 손으로 그린 자세하고 채색이 선명한 지도다. 펼쳐진 지도 속에서 익숙한 광한루 등 고을의 조목조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또 한 장의 지도를 손에 들고 펼쳤다. ‘동여도’다. 목판 ‘대동여지도’의 원고본으로, 23첩 전체를 펼치면 7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그가 들고 있는 건 진본이 아니다. ‘지도그리는 화가’ 춘풍 최현길의 모사본이다. 고지도를 사랑했던 최현길은 많은 이들이 가까이에서 지도를 볼 수 있도록 고지도를 똑같이 그려내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 학예연구사는 그의 유족이 도서관에 기탁한 작품을 모아 내년 ‘아름다운 필사’전을 열 계획이다.

이 학예연구사가 들려주는 김정호 얘기는 교과서나 여러 책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 그는 “김정호는 수많은 자료를 펼쳐놓고 책상에서만 그렸다”고 했다. 괴나리 봇짐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렸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란 얘기다.

“조선은 지도의 나라예요. 지리지 제작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중앙집권국가여서 지방에 파견된 수령들이 수집한 정보를 담은 지리지가 많았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지방의 다양한 지리지, 지도를 책상 위에 갖다놓고 순식간에 그려낸 거죠.”

그와 고지도의 인연은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그의 박사논문은 ‘신라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이다. 경주의 도시 발달 형태를 새롭게 규명한 것으로, 고지도와는 좀 거리가 있다. 규장각에서 7년간 고지도를 정리하고 해제를 쓰면서 고지도 전문가로 이름표를 고쳐 단 그는 2009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옮겼다.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지도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강의하는 주제는 둘이다. ‘김정호’와 ‘독도’다.

그는 지리지와 고지도상에 나오는 독도 연구를 바탕으로, ‘독도(獨島)는 우산도(于山島)’‘독도는 석도(石島)’란 내용을 담은 독도 해제집을 낸 바 있다.

우산도가 지리지에 등장한 건 ‘세종실록지리지’가 처음이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현의 정동(正東)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는 대목이다. 우산도와 무릉도(울릉도)를 각각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울릉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관리와 통제를 위해서였다. 그래도 도망쳐 가서 사는 이들이 생겼다. 이들을 섬에서 퇴거시키기 위해 관리를 파견했는데, 이들에게서 또 다른 섬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1418년께 조사에 나섰지만 당시 파견된 관리는 태풍으로 우산도에는 가지 못하고 섬이 있다고만 보고했다.

독도가 석도(石島)로 표기된 첫 공식 문서는 1900년 10월25일 공표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다. 울릉도와 부속된 죽도(댓섬)와 석도를 조선의 고유 영토로 공표한 칙령이다. 일본이 영토 편입을 위해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로 명명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1905년 2월)보다 5년이나 앞섰다.

이 학예연구사는 “울릉도 지역에서는 독도를 돌섬으로 불렀다. 한자음을 딴 석도가 바로 독도”라고 설명했다. ‘독’은 ‘돌(石)’의 사투리다.

이런 혼란은 순 우리말 지명을 한자의 소리로만 읽으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이 학예연구사는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우리 지명은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표기했는데 최근 100년 사이 한자의 소리로만 읽게 되면서 순우리말 지명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울릉도 옆 죽도도 댓섬이라 했어요. 부르던 행정지명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라지는 건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죠, 풍납토성은 바람들이, 몽촌은 곰말이었는데 한자 음을 따 읽는 습관때문에 모든 지명이 바뀐 겁니다.”

그는 이런 아쉬움에 고지도를 통해 본 지명연구 총서를 내오고 있다.

한자 표기 지명의 우리말 이름과 현재 위치를 정리한 것으로 서울, 경기, 충청(2권), 강원(2권), 경상도(2권) 등 8권을 펴냈고, 내년에 강원도편을 낼 예정이다. 이는 도서관 사이트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이 못지않게 그가 애정을 갖고 공을 들이는 일은 고문헌 기탁사업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보물을 선뜻 내놓는 걸 꺼리는 분들을 설득해 문헌을 기탁받는 것이다. 받은 자료는 전시를 하고 도록을 만들어 100권씩 가족에게 드린다. 고마움의 표시다.

흩어져 있는 옛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국가 지식자료로 남기는 게 국가대표 도서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누군가는 연구하고 어떤 발견을 하게 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일반 공공도서관과 다른 기능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보러 오는 도서관이 아니에요. 영구보존이 제일 중요하죠. 도서관에 한번 들어와 등록하면 어떤 자료도 폐기할 수 없어요. 책의 가치는 따지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은 이용자가 결정하는 거죠. 미래 이용자가 있기 때문에 지금 이용자가 가치없다고 없애지 않습니다.”

수집은 법적 납본 외에 별도의 수집, 기탁 등 여러 갈래로 이뤄진다. 그런 면에서 그는 기능이 같은 국가기록원과 국립중앙도서관이 합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이란 첫 책에서 시작된 그의 오랜 꿈의 여정은 이어지고 있다. 예순다섯살 즈음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쓰는 게 목표다.

그 길에서 그는 ‘조선의 도시 권위와 상징의 공간’ ‘임금의 도시:서울의 풍경과 권위의 연출’‘천년의 길’ 등의 책을 펴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있는 궁은 권위를 드러내도록 크고 화려하게 설계되는데, 우리의 경복궁은 판이하다. 건물은 아담하지만 북악산을 끌어들여 웅장함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전통도시의 형성 과정과 모습 속에서 발견한 그런 한국문화의 특수성과 문명의 보편성을 한 코로 꿰어내자는 구상이다.

“지금의 모든 글쓰기와 연구는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이죠. 고대로부터 조선시대, 일제강점기까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신라는 그 출발입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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