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 작전의 덫
望蜀之歎(망촉지탄). 거대한 촉(蜀)의 땅을 얻고 싶어 하는 탄식이란 뜻이다. 인간의 욕심엔 끝이 없다는 의미의 비유적 표현이다. 넘치는 유동성에 부동산이 불로소득의 수단이 된 상황에서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돈이 돈을 낳는 시장이 된 지 오래다. 부자들은 정부의 핀셋 규제를 피해 규제가 덜 하고 돈이 될 만한 지역을 찾아 본능적으로 이동한다. 이들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서울에서 다시 수도권으로 활동 범위를 옮기고 있다. 정보가 원동력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지역을 선점하고 거래해 수익을 남기는 무리, 이들을 ‘작전세력’이라 부른다.

경남 양산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A씨는 2년 전 어렵게 마련한 목돈으로 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A씨도 당시 매매를 고려했다. 하지만 2016년 양산시는 분양권 거래 총액이 전국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투자자들이 북적이는 시기였다. 집값은 A씨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 빠르게 올랐다.

같은 해 겨울 발생한 경주 지진은 일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냉각시켰다. A씨가 살던 아파트 벽에도 금이 갔다. 인근에서 진행 중이던 공사장의 불은 한 달 넘게 꺼졌다. 거리엔 수입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후 미분양이 늘면서 아파트 시세는 오름세를 멈추고 제자리에 머물렀다.

A씨는 해가 바뀌자 수도권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지진의 공포가 컸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까지는 손이 닿지 않았다. 경기도 외곽의 신축 다세대주택은 A씨가 집을 알아보던 몇 달 전보다 값이 올랐다. 넘친다던 인터넷 매물 정보들은 대다수 광고였다. 현지 공인관계자는 투자자들이 휩쓸고 지나가며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신축 빌라 앞에 세워진 수입차를 보며 A씨는 전세로 마음을 돌렸다.

올겨울 2년 전세 만기를 앞두고 A씨는 갈 곳을 잃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서다. 신축 다세대주택이 넘치던 때 대출을 끼고 경매로 집을 산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안 된다며 A씨에게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A씨는 투자자들 등에 떠밀려 수도권으로 왔는데 또 개인투자자에게 발목이 잡혔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강도 규제에도 ‘작전세력’은 여전하다. 수년 전 유행했던 빌라 투자가 고개를 들고, 전세난이 불거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천시에서 청약률이 오르자 작전세력의 영향으로 풀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덫에 걸린 건 서민, 그리고 전세난민일 가능성이 크다. 전세 물량 과잉으로 임차인이 갑(甲)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여전히 임차인은 을(乙)일 수밖에 없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 중 계약기간 이후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가구가 작년보다 7배 급증했다는 통계가 씁쓸하다. 안전망 밖의 피해 건수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신규 택지지구를 공급해 주택을 늘리겠다는 정책의 방향성에도 물음표가 남는다. 희소성이 높은 지역을 물색하는 작전세력의 뒤에 선 무주택자들이 임대에만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모니터링이 통계가 아닌 현장에 근거를 둬야 하는 이유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