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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호 이사 “故 신성일, 정직하고, 의리 있고, 고집이 셌다”

-신성일을 추억하는 영화인, 관계자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고(故) 신성일의 빈소에는 영화인들의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빈소에는 많은 영화인들이 찾아 한국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인을 추억했다.

▶김두호 신영균 예술문화재단 상임이사=70년대부터 영화를 취재하며 신성일이라는 배우를 만났고, 신성일의 스타고백을 100회나 연재하며 인간됨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배우로서는 화려한 인생을 살다 간 분이다. 톱스타라는 말이 처음 붙은 꽃미남 1세대 원조였으며, 미남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20년 이상 유지했다.

60~70년대 한국 영화계의 중흥기를 이끄는 데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존재였다. 상업적인 대중예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주연 작품만 507편이고 조연까지 포함하면 1천편이 넘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기록이다.

배우협회 회장직을 내놓은 후 한때 정치에 입문하고 국회의원이 된 후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신성일은 타고난 영화배우였다. 일생을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하고 산 분이다.

그는 정직하고, 의리 있고, 고집이 셌다. 자서진에서 외도 사실을 밝혀 대중의 시선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해서 생긴 일이라고 본다. 인터뷰를 해보면 숨길만한 일도 모두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오랜 기간 정상에 있었던 미남 배우에게 수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항간에 바람둥이로 알려진 것은 오해다. 그는 외도를 했지만 한번도 이혼이라는 말을 꺼낸 적도 없고 가정을 버리지도 않았다. 유부남으로서 바람을 핀 것은 잘못이지만, 타고난 영화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원로배우 신영균=고인과 동시대에 활동해서 더욱 침통하다. 신성일은 굉장히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얼마 전 폐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전화해서 “공기가 좋은 제주도에서 지내라”고 말했고 “(신성일이) 내려오겠다”고 했는데 못왔다. 한국 영화계의 아이콘 같은 분이시다. 영화속에서 하고 싶은 걸 다해봤으니 이제는 내려놓고 편히 쉬길 바란다.

▶배우 안성기(공동 장례위원장)
=그동안 많은 별이 있었지만 신성일 선생님은 범접할 수 없는 별이었다. 그 업적은 우리 영화계에 영원히 남을 것으로 믿는다. (신성일) 선배님과는 지난 봄부터 내년에 같이 영화를 하기로 약속을 해둔 상태였다. 오랜만에 함께 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부산영화제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건강을 회복하실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밝았다. 갑자기 별세했다는 소식에 너무 안타깝고 허망하다

▶배우 이순재=60년대 한국영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막대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영화 중흥에 큰 역할을 했다. 제일 바쁠 때는 동시에 20작품 이상을 했다. 고인의 작품은 많은 자료가 남아 있어 후학들에게 좋은 교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는 얼굴이 좋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몇 번 더 보는 건데, 너무 일찍 가 아쉽다. 건강했으면 말년까지 좋은 작품을 더 많이 했을 텐데...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신성일 영화인장 장례위원회 위원장)=지난 9월 선생님이 계신 화순의 병원으로 위문 갔을 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 선생님과 영화 이야기를 나눴고, 선생님도 곧 영화 제작에 들어간다면서 대본 각색을 마쳤다고 말하는 등 의욕을 보였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별세할 줄은 몰랐다.

▶배우 김수미=지난 1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신성일 선생님과 함께 출연했다. 당시에도 이야기 주제는 거의 영화였다. 머리속에는 영화 밖에 없었고, 배우의 삶이 아름다워보였다. 그런데 ‘마이웨이’가 선생님의 유작이 됐다. 하느님이 하늘에서 배우를 하라고 데려가신 게 아닐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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