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으로 유명한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 우정을 나눈 인왕산 부터 다산 정약용의 소박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남양주 운길산, 퇴계 이황이 사랑한 봉화 청량산 등 전국 24개 명산에 얽힌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준다.
겸재의 걸작으로 꼽히는 ‘인왕재색도’는 죽음을 앞둔 친우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지은이는 비온 뒤 겸재가 바라봤을 인왕산의 지점을 찾아가는가하면, 발길 대로 자세히 설명을 곁들여 유용한 산행길 정보를 제공한다.
신라가 망하자 금강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풀을 뜯어먹었다는 마의태자의 ‘삼국사기’이야기는 역사서에 딱 한 번 나오지만 그 애잔한 설화는 충주 월악산 하늘재를 통해 오래 전해져 내려온다. 마의 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넘었던 하늘재는 525m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 왕이 북진을 위해 연 길이다. 마의태자는 월악산의 신령스런 영봉이 바라다 보이는 기슭에서 몇 해를 머물다 원주, 홍천, 인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갔다.
이 책이 주는 큰 즐거움은 열 마디 말이 필요없는 장쾌한 사진들이다. 정유재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가 지켜낸 창녕 화왕산성의 긴 허리를 한데 잡아내거나 퇴계가 마음 속 이상향으로 생각한, 단풍으로 함뿍 물든 청량산, 산 아래 운해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지리산 천왕봉의 해돋이, 도솔천에 가득 피어난 억만송이 꽃무릇은 오래 시선을 빼앗는다. 책에서 저마다의 산이 지닌 백 가지 색향을 맡을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