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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지혜·사랑·눈물과 감동이…
양림동 오웬기념관 앞에서 미스터션샤인의 길을 떠나는 폴과 나비의 작별.
문체부-광주시, 대구·여수 이어 세번째
1930~2030년 광주의 과거·현재·미래
광주학생운동서 민주화 운동까지
상처 치유해가는 과정 몸으로 느끼게
나병환자 구제에 헌신 최흥종 재조명
손으로 그린 영화간판 광주극장도 눈길


‘빛 고을’ 광주가 온 국민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수려함에 ‘등급을 메길수 없는 산’ 무등산이 잠시 개방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자랑하더니, 아시아 문화예술의 메카로 변신한 오월광장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짙게 풍긴다.

최근 복원된 광주 무등산 모노레일.
무등산의 오랜 명물 모노레일이 운행을 재개했고, 펭귄마을의 뒤뚱뒤뚱 어르신도 서울사람, 대구사람 멀리 강원도 사람까지 미소로서 반긴다. 충장로의 버스킹이 신난다.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가 즐비한 ‘빛고을’의 션샤인을 전국의 벗들과 나누려는 광주의 의지가 분명해보인다.

문화, 예능, 사상, 지혜, 노래, 추억, 용기, 설움, 희망으로 아로새겨진 100년 이야기 버스를 만든 것도 이때문이다. 두 팔 벌린 광주의 변신은 온 국민에게 어떤 느꺼움을 준다.

“그래, 그 좋다는 그 버스 한번 타고 놀아보세.”

버스에 오르면 매력적인 안내자 나비(이혜원 분)가 옷깃만 스쳐도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손님을 기다린다. 때론 말괄량이 신여성으로, 때론 이별을 아파하는 썸녀로 이 버스의 내비게이터가 되는 만능 예능인 나비(NAVI)는 전국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의 온갖 질문, 온갖 자극에 전방위 예능감으로 반응했다.

광주 남자의 싱거움과 의로움을 겸비한 청년 폴(FFOL박정진 분)은 빛의 숲을 찾는 청년(Find Forest of Light)이다. 어떨 땐 ‘풍각쟁이’ 모던보이로,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을 땐 구국의 ‘미스터션샤인’으로 100년 광주의 희로애락을 전한다.

버스는 지난해 한국프로야구 챔피언인 기아타이거스의 광주챔피언스필드를 시작으로 광주천변을 거쳐 광주극장에 이른다. 광주천은 무등산으로부터 발원해 광주시내를 가로지르다 영산강과 합류하는 24㎞ 길이의 하천이다. 본래 강폭이 지금의 5배 이상으로 조탄강으로 불렸고 광주천 백사장에 장이 섰다.

1933년 설립된 광주극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며 예술영화전용관이 된 지금도 사람이 직접 그리는 초대형 그림을 내걸어 추억 돋게 한다. 우묵배미의 사랑, 플래툰, 원스, 대합실의 여인, 쉐이프 오브 워터 등을 상영한다.

버스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상지인 광주제일고, 양동시장, 광주공원을 지난뒤 양림동에 정차한다. 1929년 통학기차안에서 광주고보(광주제일고)와 일본 학생 간 싸움이 붙었고, 이를 일경이 편파적으로 처분하자 전국의 학생들이 격분해 항일운동을 벌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이후 최대 항일운동으로 확산됐으며, 학생의날(11월3일)을 제정한 근원이 되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허기를 달래던 양동시장에 먹거리도 무궁무진한데, 닭전머리의 옛날통닭을 빼면 광주를 떠나는 길에 뒤가 허전하다.

양림동에서 하차하는 승객들은 1930년대를 거닐게 된다. “오빠는 풍각쟁이야”는 그시절 히트곡이 양림살롱의 재잘거림을 돋우고, 이장우 가옥 마당엔 광주출신 중국 3대 음악가 정율성이 육성이 울려펴진다. 양림살롱에선 광주문학의 선구자 김현승 시인이 즐겨마시던 네덜란드 방식의 커피, ‘모단보이 코오-피’를 내어준다. 쓴맛은 적고 신맛이 약간 가미돼 매력적이다.

양림교회는 한국사람 보다 한국말 잘하는 의사이자 사회통합 남북통일 조율자 인요한 박사의 외할아버지 유진벨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이다. 유진벨은 3.1운동의 실상과 일제의 잔혹함을 알리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생김새는 달라도 션샤인 ‘유진초이’가 생각난다

양림교회에서 성자 최흥종과 포사이드를 빼놓을 수 없다. 최흥종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1909년 4월 선교사 포사이드(W H Forsythe)와의 만남이었다. 영산포나루에서 추위에 떨며 피고름을 흘리는 나병환자에게 외투를 벗어 덮은뒤 나귀에 태우고 자신은 마부가 되는 포사이드의 모습을 보고, 최흥종은 깨달음을 얻어 나병환자 구제에 헌신했다. 소록도에 마리안느-마가렛이 있었다면 광주엔 최흥종과 포사이드가 있었다.

양림동 펭귄마을.
펭귄마을에 들어서면 1970~1980년대이다. 그때의 물품도 보고 폐품으로 만든 예술작품도 감상한다. 빈집이 늘고 쓰레기가 쌓이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어르신들이 쓸 만한 것을 빼고 청소해 말끔한 마을로 바꾸었는데, 다리 힘이 없는 어르신들의 걸음걸이가 펭귄걸음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의 정신에 예술가들이 감동해 재활용 예술의 메카로 키웠다. 펭귄마을 어귀의 소녀상은 할머니와 소녀 투샷이다. 지금의 내가 힘겨웠을 10대의 나를 다독이는 모습이 가슴 찡하다.

다시 버스에 타서 조금만 가면 1980년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국립 아시아문화전당과 전남도청터, 오월광장을 만난다. 나비는 전남도청 터에서 폴과 재회하며 연민의 정을 전하려 하지만, 민주주의 등 고귀한 가치, ‘빛의 숲’을 찾아나서는 폴의 발걸음을 잡을 수가 없다.

폴은 빛을 향해, 나비는 사람을 향해 갈 때, 광주가 낳은 천재가수 김정호의 ‘하얀나비’ 선율이 울린다. 나비와 폴의 길은 달라도 최종목적지가 광주 100년 버스 고객인 ‘대한민국의 행복’이라는 점은 같다.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이용섭 광주시장이 함께 힘을 보태 만들었다. 대구 ‘김광석 음악버스’, ‘여수 밤바다 낭만버스’에 이어 문체부의 3번째 작품이다.

버스여행은 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2030년 광주의 비전, 항일 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 음악가의 고뇌와 아픔, 사랑 이야기, ‘가을의 기도’ 김현승 시인의 작품 이야기 등도 재미있게 담았다. 금요일 야간 1회, 토요일 오전과 오후 각 1회, 만원의 행복이다. 

함영훈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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