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성장 늦고 잦은 코피…혹시 고셔병?
효소 결핍으로 생기는 유전성 희귀질환

#. 올해 10살이 된 A군은 지난해 ‘고셔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세 살 터울의 동생보다 키가 작고 신체 발달이 더딘 것이 염려돼 오래전부터 성장 클리닉 치료를 받았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해 병원에서 효소 및 유전자 검사를 시행한 결과 고셔병 환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름조차 생소한 고셔병은 1882년 간과 비장이 비대해진 환자에 대해 처음으로 기술한 프랑스 의사인 ‘필립 찰스 어니스트 고셔’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고셔병은 체내에서 바이러스나 노화세포 등을 분해하는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 효소 부족으로 발생하는 유전 질환이다. 효소의 결핍으로 분해되지 못한 세포들이 간, 비장 등에 체내 곳곳에 과도하게 쌓이며 각종 증상을 유발한다. 전 세계 인구 4만~6만 명당 1명 꼴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이다.
하지만 유전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A군의 부모와 동생은 고셔병 환자가 아니고 유독 A군만 고셔병 환자인 이유는 무엇일까? 검사결과 , A군의 부모는 모두 고셔병을 유발하는 GBA 유전자를 가진 ‘보인자’였다. 보인자는 유전병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 경우 태어난 자녀가 고셔병일 확률은 25%, 정상일 확률은 75%이다. 이러한 확률 때문에 같은 부모에서 태어났지만 A군의 동생은 정상인 것이다.

자녀가 또래에 비해 성장이 더디고 잦은 코피, 멍과 함께 뼈가 아프다고 이야기한다면 한 번쯤 고셔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증상도 고셔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다. 특히 분해되지 못한 세포들이 간과 비장이 쌓이게 되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복부가 불룩해진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소아기에 발병이 많은 편이므로 성장이 더딘 자녀라면 관련 증상들을 좀 더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소아 고셔병 환자의 대부분은 성장부진을 보인다. 충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유미 교수는 “자녀가 저신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모 키에 비해 성장이 부진하다거나 혈소판의 감소, 비장 비대, 설명되지 않는 다리 통증 등이 있다면 간단한 혈액 검사로 고셔병을 감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성장 속도를 방해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는 고셔병과 같은 유전적 질환도 포함되어 있다는 부분을 의료진과 부모가 모두 기억하고, 면밀하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셔병은 환자마다 나타나는 증상이 다양하고 통증의 크기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진단이 쉽지 않다. 현재 국내에서 진단받은 환자수도 약 50~70명 정도에 그치는 초희귀질환이다보니 의료진 사이에서도 질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혈액 검사를 통해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비호지킨성림프종과 같은 혈액암이나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 혹은 특발성 비장 비대로 진단받아 진단이 지연되는 환자도 있다. 고셔병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이 악화되기 때문에 제때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다행히 고셔병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면 정상인과 똑같은 삶이 가능하다. 희귀질환 임에도 치료 옵션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치료제가 없어서 골수 이식, 비장절제술 등 고식적 치료만 가능했지만 1980년대 후반, 부족한 효소를 체내로 보충해주는 효소대체요법(ERT)이 등장하면서 고셔병도 만성질환처럼 관리가 가능해졌다. 효소대체요법은 2주마다 병원에 방문해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소아 환자의 경우 치료를 통해 또래와 비슷한 성장 속도를 되찾을 수 있으며 골격계의 침범도 호전을 보일 수 있다. 최근에는 기질감소치료법(SRT)라고 불리는 저분자물질의 경구용 치료제까지 등장해 2주 마다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경구 복용을 통해 환자 스스로 질환 관리가 가능하다. 

김태열 기자/kty@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