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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보통사람은 ‘디지털 독재’를 막을 수 있을까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이 합쳐지면서 사상 최대 도전에 직면한 바로 지금 인류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정치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다. (…) 사람들은 옛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만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하라리, 현 지구촌 문제 해법 제시
과학기술·정치·종교 등 21가지 주제 다뤄
일자리·난민·테러 대응 등 실질적 조언

자유주의 환멸로 가치공백 사태 초래
트럼프 선택은 ‘무력한 대중의 반란’


트럼프의 고립주의, 영국의 브렉시트는 쉽게 자국 이기주의로 얘기되지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에 따르면 그 함의는 600쪽 짜리 두툼한 책 한 권을 쓸 정도다.

우리가 한낱 유인원에서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됐는지 이야기를 들려준 ‘사피엔스’의 저자 하라리는 영어판과 한글판을 동시에 낸 최근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선 우리가 직면한 현재의 과제와 도전에 집중한다. 세계가 급격히 변하며 과거의 가치가 전복되는 시대의 대단절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하라리가 본 현재 세계가 직면한 혼란 중 하나는 자유주의의 위기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왔는데, 20세기의 경우, 세 가지 이야기, 곧 파시즘,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통해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시즘이 나가 떨어졌고 80년대 후반까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가 양대 산맥을 형성했으나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자유주의는 인류의 유일한 가치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사람들은 자유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세계는 가치의 공백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즉 이야기가 없어진 것이다. 이는 아무런 의미도 파악할 수 없게 된 걸 뜻한다.

하라리 교수는 “자유주의 정치 체제는 인류가 산업 시대를 거치면서 증기기관과 정유공장,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구축된 것”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현재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에 대처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신기술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18년 보통사람은 자신이 점점 자신이 사회와 무관하다고 느낀다. 세계화, 블록체인, 유전공학, 인공지능, 기계학습 과 같은 말이 쏟아져 나오지만 보통사람은 이 중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다. 자유주의 이야기는 보통사람의 이야기였다.

하라리는 이제 대중은 자신이 사회와 무관해질까봐 두려워한다며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남은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데 필사적이라고 말한다. 트럼프와 브렉시트라는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그런 대중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라리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세계를 위한 갱신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2050년 인류의 서사에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생명공학 등이 유의미하게 통합돼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 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인간을 고용 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무용 계급을 만들어낼지 모른다”며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책은 지금 우리 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과학기술, 정치, 종교, 교육 등 21가지 주제를 놓고 지구촌의 상황을 조망한다.

AI가 빼앗아간 일자리는 어떻게 되찾을 것인지, 가짜뉴스의 본질은 무엇인지, 난민 사태, 기후변화와 테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질문들로 우리를 이끈다.

하라리는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텐센트 등 데이터 거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우리에 관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은 것이라며, 그 결과 인간의 권위가 알고리즘으로 옮겨가 구글이 골라주는 대로 물건을 사는 데서 나아가 장기적으로 충분한 데이터와 컴퓨팅 능력이 커지면 우리를 조종할 뿐만아니라 유기적 생명을 재설계하고 비유기적 생명체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라리는 보통 사람들은 이런 흐름에 저항하기가 어렵다며, 부와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디지털 독재를 막고 싶다면 데이터 소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재 인류에게 닥친 기후변화 위협은 지은이가 당장의 실제적인 위협으로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수많은 임계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이 점을 넘어가면 설사 온실가스 배출을 극적으로 감축한다 해도 지금의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극지방의 얼음층이 녹으면서 지구에서 우주공간으로 발사되는 태양빛의 양이 줄어 지구가 열을 점점 더 많이 흡수, 기온은 더 오르고 얼음은 더 빨리 녹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극지방의 얼음이 모두 녹으면 그땐 어떤 수단도 불가항력적이란 것. 바로 지금 그것에 대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AI가 빠르게 일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한 부분과 정부가 해야 할 일, 반복되는 테러와 관련,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보다 금융망 차단 등 정부의 대응책 뿐 아니라 알고리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세상 속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지 등 실질적인 조언이 이어진다.

하라리는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융합이 핵심적인 근대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위협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이런 기술적 도전에 지구적으로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민족주의와 종교, 문화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민족적 종교인 유대교의 배타성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다.

책의 본문 뒤에는 한국 독자를 위한 7문7답도 담았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시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것인지에 대한 조언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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