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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희생의 문학을 다시 읽다…‘페미니즘 시각’으로
지난해 김훈의 장편소설 ‘공터에서’의 특정 묘사가 ‘남성중심의 관음증적 시선’이라고 한 시인의 발언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즈음 페미니즘 시각으로 한국문학을 다시 읽자는 한 강좌가 열렸다. 남성 중심의 주류문학을 해체해 보다 유연한 우리 세대의 문학을 구현하자는 뜻에서 기획됐다. 열 명의 연구자들이 한국문학사에 금자탑을 이룬 작가들을 해부한 이 강좌에는 매회 100여명의 수강생들이 참여해 열띤 호응을 보였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은 당시 강연자로 참여한 문학연구자 권보드래 고려대 교수를 비롯, 심진경, 장영은 등 열 명의 연구자와 세 명의 연구자가 새로 합류해 완성됐다.

이 가운데 강지윤이 분석한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이진경이 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다시 읽기는 도전적이다.

강지윤은 ‘감수성의 혁명’이란 극찬을 받아온 김승옥의 ‘무진기행’속에서 여성이라는 암호를 해독, 김승옥을 다른 시각으로 평가한다.

그는 “김승옥의 초기 소설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위악을 일종의 삶의 태도로 가지고 있다”며, “위악의 포즈를 취하기 위해 여성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무진기행’에서 윤희중은 하인숙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지만 이내 승진했다는 아내의 전언을 받고는 바로 무진을 떠난다. 즉 자기 연민 속에서 대상을 동일시하면서 성적으로 농락한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여성 섹슈얼리티를 타 넘고 다른 남성들과 함께 힘의 세계로 들어가는” 와중에 서 있는 김승옥의 여성인식이 바로 ‘무진기행’에서 보여주는 한계라는 지적이다.

그런가하면 이진경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가문, 국가, 남성의 대의를 위해 마음을 바쳐 기꺼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희생하는 과거의 원형적인 여성주인공들을 재창조”했다고 비판한다. 난쟁이의 딸 영희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재벌 손자와 성적 관계를 맺는데, 바로 효심 때문이다. 일종의 ‘매춘’인 그녀의 행동이 그렇게 미화되고 신성시된 것이다.

열 세편의 글은 근대문학, 신여성, 위안부, 진보, 독재, 민주화에 숨겨진 관습적인 성인식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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