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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원순씨가 또…’
박원순 서울시장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원또’다. 뜻을 물어보니 ‘원순씨가 또 해냈다’란 말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던 기억이다. 사상 첫 3선이자 최장수 서울시장이 된 사람이다. 이 말을 곱씹으며 흐뭇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공무원들 사이에서 ‘원또’라는 말이 다시 화제란다. 강북 한 달 살이를 하는 그를 두고서다. 뜻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미묘하다.

“3선 되고 첫 만남에서 ‘이제 일 많이 안 시킬게요’란 말을 했거든요.” 요즘 보는 서울시 공무원들은 약속이나 한듯 이 말을 하며 끝을 흐린다. 박 시장은 수첩에 쓴 생각 하나하나 정책화를 주문할 만큼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일을 많이 시키는 것은 상관없다. 문제는 즉흥적인 아이디어에 따른 지시가 많았다는 점이다. 박 시장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관련 부서는 초주검이 되는 구조였다. 일이 힘들다며 공무원 몇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끝에야 그는 불필요한 일 주문을 덜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삼양동 옥탑방에 가고서는 ‘원순씨가 또’ 시작했다고 한다. 박 시장은 폭염 속 서민 삶을 느껴보겠다는 취지로 23일째 살고 있다. 오는 19일까지 한 달을 채울 예정이다.

박 시장만 온 것은 아니다. 서울시청을 옮긴다는 박 시장의 말에 따라 그의 일을 돕고자 많은 이가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한 일 처리로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중 한 부류가 수행비서진이다. 옥탑방의 2개 방 중 하나가 이들 공간이다. 박 시장과 함께 주중주말 구분없이 돌아가며 지내기로 한 까닭이다. 자발적인 행동이라고는 하나 이더위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생각이 나 짠한 것이 사실이다. 어느 일요일에 박 시장이 먹을 죽을 배달하는 모습이 비춰진 후 그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현장 공무원도 연일 비상이다. 박 시장이 연신 떠들어 대는 것들이 모두 지시사항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많을 때는 하루에만 20개가 넘게 들어온다고 한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하나씩 검토해야 하는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박 시장은 1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강북구 수유동의 수유전통시장을 찾았다. 그는 1시간쯤 둘러보며 위생 개선, 전선 지중화, 태양광 설치, 온라인 쇼핑몰 운영, 야시장 등 특화 프로그램 운영 등 쉴새 없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상인 몇 명의 말을 듣고서는 비바람을 막는 천장 아케이드가 되레 온실효과를 낸다면서 책임자를 정해 바람 길을 뚫으라고 했다.

알고보니 박 시장이 말한 건 중 상당수는 시와 구 차원에서 기한을 두고 개선중인 사안이다. 즉흥적으로 중복 지시를 쏟아낸 셈이다. 특히 천장 아케이드 문제는 수유전통시장 상인회가 이미 파악해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천장 아케이드를 뚫으면 종일 바람에 노출되는 음지(陰地)의 상인들도 많아 의견을 조율중인 상황이다. 이 가운데 박 시장이 한 쪽 편의 말만 들어주고 가버렸다. 외려 갈등 여지만 주고 간 셈이다. 이날 공무원들은 폭염 속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박 시장의 말을 받아썼다.

‘원또’라는 말은 박 시장의 옥탑방행 이후 시민 사이에도 심심찮게 언급된다. 그는 백팩과 운동화, 낡은 구두를 앞세워 소탈한 이미지를 쌓아왔다. 2014년 국정감사 때 사회 환원을 한 적 있느냐는 한 국회의원 질문에 ‘제가 워낙 가난하다’란 말로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6억원에 이르는 빚을 두곤 청백리로 칭찬 받을 일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보여주기식 행보일 뿐이라며, 이번에도 ‘원순씨가 또’ 강북 한 달 살이로 ‘서민 쇼’를 이어간다는 시선이다. 부인 강난희 여사와 함께 생활하는 점을 들어 벌써 대권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인은 부고 말곤 어떤 기사도 괜찮으니 일단 거론되면 좋다고 한다. 이유 불문하고 인지도가 올라가는 덕이다. 네거티브도 전략 중 하나라던 박 시장도 이 공식에 맞춰 들뜬 분위기다. 박 시장은 올 겨울 혹한기 땐 금천구 옥탑방에서 살겠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옥탑방 생활이 끝나는 오는 19일에는 서울 균형발전 해법 발표를 주민 보고회 형식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강북구에 있는 기간 의도는 아니었겠으나 공무원과 시민 등 주변의 많은 이를 오랜시간 괴롭힌 것은 사실이다. 물론 박 시장 스스로도 111년만의 폭염 앞에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작 한 달의 생활로 어떤 해법을 찾았을지 의문이다. 보고회가 기대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과정에서 ‘원순씨가 또 해냈다’란 말만 선명할 뿐 ‘원순씨가 제대로 해냈다’는 말은 흐려지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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