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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학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산업기술 정책, R&D가 전부는 아니다
최근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후속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필요한 2차 사고가 나는 안타까운 일을 종종 접하게 된다. 만일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 차량이 직접 후방 차량들에 메시지를 보내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추가적인 피해는 줄일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사실, 자동차끼리 대화하는 최초의 기술은 20여년 전에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최고급 모델에만 시범 적용됐을 뿐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왜일까. 실제 서비스로 구현하기에 기술 수준이 부족했거나, 제조단가가 비싸서 적용을 안 한 것인지 모른다. 단일 기술표준이 제정되지 않아 출시를 못했을 수도 있다. 이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결국 ‘시장이 무르익지 않아서’이다.

이처럼 기업이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지 않고 제품화되어 매출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나서서 관련 분야 전문인력 양성은 물론 생산기반 구축, 법제도 정비,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해줌으로써 ‘시장을 무르익게 해줘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산업기술 정책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개발’ 지원 중심이다. 제품화를 위한 후속 R&D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필요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신기술이 신시장, 신산업으로 연결되도록 시장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여전히 정책의 무게중심은 협소한 의미의 R&D, 초기 단계 R&D에만 집중돼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 산업기술 정책은 보다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

정부R&D 규모는 2016년 이래 3년 연속 19조원대에 머물러 있고, 이미 민간 R&D는 정부 R&D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압도하는 시대다. 이럴수록 R&D 예산은 보다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기술개발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고 확산시키는 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R&D로 신시장이 창출되어 국민 삶의 질이 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예를 들어 창업 안전망을 구축하거나, 중소기업이 제품 출시 전에 문제점을 사전 검증하도록 실증 환경을 지원하고, 신산업이 클 수 있도록 초기 시장 형성에 중요한 수요를 직접 만들어주며, 불필요한 규제와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술개발이 아닌 기술혁신, 이것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소임이 실로 막중함을 느낀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력 양성, 장비구축 지원, 기술사업화, 국제협력 등 다양한 진흥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에는 R&D 지원 외에도 인력 및 자금 지원, 기술정보 제공, 인증·실증 기회 마련, 판로 개척, 수출·마케팅 등 전주기적인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실제로 일견 사소해 보이는 컨설팅조차도 기업의 성장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모 중소기업은 KIAT를 통해 해외 한인공학자를 소개받아 기술컨설팅 조언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국제협력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기존 주력 사업이던 반도체 장비 외에 3D프린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R&D만 지원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성과였기에 참으로 뿌듯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두 날개 덕분이다. 아무리 연료를 가득 채우고 활주로를 신나게 달려도 날개가 없으면 비행기를 띄우는 양력이 안 생긴다.

정부의 역할은 이처럼 비상하려는 기업에 성장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KIAT 역시 기업의 튼튼한 날개가 되도록 앞으로도 전주기적 지원책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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