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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막의 순간에도 자연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밥 버먼 지음, 김종명 옮김예담아카이드
“인간의 두뇌에는 온도에 대한 내재된 편향성이 있다.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잘 인지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눈에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느린 움직임이 우리 눈에는 띄지 않게 숨어 있다. 애벌레, 나뭇가지의 미세한 흔들림, 구름이 합쳐지고 갈라지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에서)
태풍에 집 잃고 속도를 찾아나선 과학자
초속 5cm 벚꽃 낙화…2200km 은하 이동
움직임이 만들어낸 마법같은 현상 탐색

피는 시속5~6km 속도로 몸속을 흐르고
재채기 164km·신경계 신호 400km ‘광속’
노아의 방주 등 역사적 기록 검증 재미도


고양이는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다. 10미터 밖에서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반응할 정도로 뛰어난 청각 때문이다. 작은 날파리에도 민첩하게 행동하지만 그렇다고 고양이가 파리를 잡는 일은 없다. 파리의 반응속도는 10분의 1초, 고양이는 이보다 느리다. 반면 원숭이와 닭은 힘 하나 안들이고 쉽게 파리를 잡는다.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려면 이 정도의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한밤중이나 뜨거운 정오의 한낮, 모든 게 정지해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 몸과 자연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공기 중의 먼지와 떠다니는 피부조각은 시속 2.5cm의 속도로 낙하하고 발톱은 1년에 0.5인치 자란다. 해수면은 10년에 2인치 높아지고 히말라야 산맥은 1년에 2인치씩 고도가 높아진다. 비는 시속 35km, 눈은 시속 6km, 벚꽃은 초속 5cm로 떨어진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밥 버먼 교수가 쓴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예담아카이브)는 자연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형태의 움직임과 속도를 탐구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움직임이 아닌 자연 속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저자가 세상의 움직임에 매료된 것은 허리케인으로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게 계기가 됐다. 목수가 망가진 집을 고치는 동안 할 일이 없어진 그는 적금을 털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의 비밀을 찾기 위한 세계여행에 오른다. 그가 무브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으로 고른 건 드라마틱한 우주의 팽창이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관측된 우주의 움직임은 인식의 범주를 넘어선다.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까지 거리는 우주 전체 크기의 1퍼센트의 10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 은하는 우리로부터 초속 2200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그나마 우주 전체의 움직임 중 가장 느린 축이다. 초속 2200km의 속도란 코니 아일랜드에서 할리우드까지의 거리를 “안전벨트를 매세요”라고 말하는 사이에 도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로부터 1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은하는 초속 2만2000km의 속도로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사실 은하들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이 초자연적인 속도는 은하 사이의 빈 공간이 팽창함으로써 벌어지는 현상이다.

저자는 무지막지한 광대한 스케일의 속도에서 눈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자연 속의 느린 움직임 속으로 수직낙하한다.

지구상에서 관찰되는 느린 속도의 움직임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은 땅의 움직임 자체다. 동굴 속에서 종유석과 석순은 500년에 1인치 정도의 속도로 자라고,소파에 1년동안 꼼짝않고 누워있다고 해도 미국에 산다면 서쪽으로 1년에 0.5인치씩 움직인다. 지각의 움직임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모두 8개의 지괴가 마그마 위에 떠다니고 있으며, 각 지괴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다양하게 운동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 하와이 해저 균열대로 1년에 4인치 정도 북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작은 우주인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빠르기 역시 가공할 만하다.

수소원자와 산소원자가 수소결합으로 물분자로 뭉치는데는 1조분의 1초가 걸린다. 1조초가 3만2000년에 해당함으로 1조분의 1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수다.

우리 생명의 중추인 심장은 일생동안 25억회 박동한다. 성인 남성의 경우 4.73리터, 여성의 경우 3.78리터의 혈액이 심장에 의해 평균 시속5~6km의 속도로 흐른다. 이 속도는 우리가 걸음을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다. 이 정도 속도로도 팔에 놓은 주사 약물이 뇌까지 전달되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는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초다.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기들은 1분에 한 두번 깜빡인다. 자라면서 깜빡이는 횟수가 늘어나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어른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파킨슨병을 앓는 이들은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지만 조현병 환자들은 보통사람들 보다 훨씬 많이 깜빡이는데 역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세포내의 리보솜이 질병에 대항해 싸우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는 10초가 걸린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가장 빠른 속도의 움직임은 무조건 반사다. 이 중 재채기는 압도적이다. 재채기는 콧속의 간지러움으로 시작해 목구멍과 폐, 입,코가 대폭발을 일으키듯 전개되는데 4만여개의 입자들이 고속으로 뿜어진다. 재채기의 속도는 의학적 장비를 동원한 실험에서 시속 164km까지 나온다. 기네스북 기록은 115km다.

기분 나쁜 물체를 밟았을 때 순간적으로 피하는 반사적 반응의 경우 뇌에서 신경계를 통해 전달되는 전기적 신호의 속도는 시속 400km에 달한다.인간은 갑작스런 움직임, 위험을 잘 인지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는 19세기 믿을 만한 과학적 지식이 쌓이고 나서야 역사적 사실이 아닌 하나의 전설임을 보여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증기가 모두 비로 바뀌어 퍼붓는다해도 해수면은 2.5cm 밖에는 높아지지 않는다. 노아가 겪은 40일간의 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단지 좁은 지역에만 국한한 국지성 홍수일 수 있다.

책은 자연의 움직임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들과 현상, 이를 연구한 이들의 이야기와 저자의 여행담을 섞어 원자에서 우주까지 거의 모든 움직임의 과학적 근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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