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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인기 아파트 단지 내 상가가 안되는 이유
주중 차를 쓰지 않는 나는 출퇴근 길에 이웃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아파트 단지 입구를 지날 때 경비 아저씨들과 수시로 인사하며, 지하철역까지 걷는 10분정도 사이 도로변에서 자주 아는 분과 마주친다. 단골 치킨집 아저씨가 문 앞에서 청소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피자가게 아줌마와 유리창 너머로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매일 차로 출퇴근 하고, 주 1~2회 인근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니는 와이프는 오히려 나보다 사람들을 잘 몰라 놀랄 때가 있다. 어쨌든 나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데도 말이다. 와이프는 ‘이웃과 부딪힐 일이 없어서’라고 한다. 차로 출퇴근하며, 장을 볼 때도 대형마트에 들러 바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해 엘리베이터를 통해 현관에 도착하니 이웃과 얼굴볼 일이 거의 없다는 거다.

이런 패턴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 앞 상가가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이유를 쉽게 이해시켜준다. 아파트 단지 배후수요를 기대하고 문을 열었겠지만, 사람들은 멀리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진입해 버린다. 퇴근 길 집 앞 가게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사고 교류하던 문화는 사라진지 오래다.

누군가 이를 ‘아파트 지하주차장-대형마트-대형냉장고’의 ‘삼각동맹’이 바꿔놓은 도시생활의 변화라고 했다.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고 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자동차와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연결, 그리고 이를 보관할 수 있는 대형 냉장고가 시민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거다. 이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내 최고가 아파트 단지에서 조차 단지 내 상가가 왜 그리 부진한 지 설명하는 이유가 된다. 한 채당 수십 억 원 하는 아파트를 수천가구나 배후로 하지만 빈 가게는 예상보다 많다.

나의 이모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그런 도심 대단지 인기 아파트 중 하나다. 지상엔 차가 없다. 주차장을 모두 지하화 했고, 지상엔 인공 호수(작은 연못이 맞겠으나), 뛰어난 조경을 갖춘 공원, 예쁜 산책로, 대형 커뮤니티시설 등으로 꾸몄다. 그런데 가끔 놀러 가면 이상하게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관리비 때문인지 불을 별로 켜놓지 않아 전반적으로 어둡다. 저녁에 한 바퀴 둘러보면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아 좀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동갑인 외사촌과 벤치에서 캔 맥주라도 한잔 마시고 있으면 ‘시끄럽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산책하고 쉬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일 텐데 별로 산책하고 싶지 않다.

도시개발이 꼭 이런 식의 아파트와 대형마트, 승용차 중심의 도시가 아닐 수 있다. 뉴욕만 봐도 그렇다. 인구의 70%이상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출퇴근 한다. 대형 아파트 단지나 대형 마트는 없다. 그보단 골목마다 24시간 열려 있는 작은 식료품가게가 사람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웃들을 분리하고, 가두는 방식이 아니라 어울리고 소통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다른 도시개발은 충분히 가능하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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