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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무 회장 타계-주요 업적] 正道경영과 집념으로…매출 160조 ‘글로벌 LG’ 일궜다
30조 럭키금성, 20년만에 5배로
대기업 첫 선진 지배구조 안착
럭키금성 CI ‘LG’ 교체 미래준비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올곧은 ‘정도(正道) 경영’으로 한국 재계를 이끈 거목으로 평가된다.

구 회장은 창립 70주년이던 작년 신년 인사말에서도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경영 시스템을 혁신하더라도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며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 기업이 되자”며 정도경영을 당부했다.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1995년 LG그룹 회장에 오른 후 지난 23년 동안 LG 매출은 30조원(1994년)에서 2017년 160조원으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구 회장은 특유의 뚝심과 결단의 리더십으로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 사업을 세계 1위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또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른 전장사업을 육성하고 국내 최대 규모 융복합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에 4조원을 투자해 100년 이상을 영속할 LG의 초석을 다졌다.

구 회장은 1945년 2월 10일 경남 진주에서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1964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에 입학한 후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 애쉬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4년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인 1975년 LG화학 심사과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본격화했다. 1981년 LG전자 이사, 1984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상무 등을 거쳐 1989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이 은퇴하며 LG그룹 3대 회장에 취임했다.

1996년 10월 구본무 회장이 잭 웰치 前 GE 회장과 경영혁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

구 회장이 총수로 있던 지난 23년간 LG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격랑의 시기를 거쳤다.

힘든 시기일수록 구 회장의 위기관리능력은 빛났다. 외환위기 때는 핵심역량이 될 업종을 선택ㆍ집중하고, 2003년 대기업 최초 지주회사 전환으로 선진적인 지배구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1998년 말 정부가 주도한 빅딜 논의로 반도체 사업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영위하던 LCD 사업을 따로 분리해 ‘LG LCD’를 설립한 것은 구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로 평가된다.

이후 구 회장은 디스플레이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2009년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구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던 대형 OLED의 본격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 결과 소니 등 해외 업체들도 포기했던 OLED TV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데 성공해 현재 글로벌 TV업체 15개사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TV용 올레드 패널을 납품하는 회사로 키웠다.

이차전지 성공신화도 구 부회장의 뚝심 리더십이 만든 결과물이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영국 출장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하면 여러 번 반복 사용이 가능한 이차전지를 처음 접하고, 이차전지가 미래의 새로운 성장사업이 될 가능성을 봤다.

2005년 이차전지 사업이 2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을 때도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다시 한번 임직원들을 다독였다. 그 결과 LG화학은 중대형 이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2002년 5월 구본무 회장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는 LG전자가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그룹 전체적으로 오히려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2005년 ‘LG웨이(Way)’를 선언하며 전자ㆍ화학ㆍ통신 중심의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재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디딤돌이 됐다.

‘LG웨이’는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실력을 배양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정도경영’의 행동방식으로 ▷궁극적인 지향점인 ‘일등 LG’, ‘시장선도 기업’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미래 준비도 적극적이었다. “미래성장사업의 성패는 R&D(연구개발)에서 판가름난다”는 신념 아래 디스플레이, 2차전지, LTE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했다. 나아가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 건립을 결정했다.

일에서 만큼은 완벽주의자였지만 소탈하고 탈(脫)권위적인 성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탈(脫)권위는 LG의 심벌마크인 ‘미래의 얼굴’과도 무관치 않다. 구 회장은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변에서는 “럭키금성이 널리 알려져 있어 바꿀 필요가 없다”며 반대했지만 구 회장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CI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심벌마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안들 가운데 LG의 현재 심벌마크인 ‘미래의 얼굴’이 세계, 미래, 젊음, 인간, 기술의 의미를 포용하고 있다고 판단해 최종 결정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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