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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쾌락의 윤리’ 에피쿠로스의 진정한 의미는?
현대 독일철학의 아이콘 ‘프레히트’
‘철학=고리타분’ 아닌 재미있고 유익

사상가 열전 벗고 현재시각서 조명
2500년前 사람들의 생활과도 연결

‘현대 독일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의 ‘철학하는 철학사’ 3부작은 ‘철학의 고전’으로 불린다. 이 책은 프레히트가 어떻게 하면 철학을 대중에게 더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지 고심끝에 내놓은 야심작으로, 이번에 첫 권 ‘세상을 알라’(열린책들)가 번역돼 나왔다. 서양철학의 기원, 고대와 중세의 사상과 철학적 시대상을 다룬 이 책은 철학사 분야로는 이례적으로 독일에서 15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그는 철학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현재 우리들에게 유익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독특한 기술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종래 많은 철학사가 취해온 인물과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 대신 그들의 사상과 관념, 당대 정치· 사회와 경제를 오가며 주요 테마를 꼽은 뒤, 지금의 현실과 연결시킴으로써 2500년 전의 철학을 시의성있는 주제로 다가오게 만든 것이다.

“철학의 상황과 관련해서 현재 우리 시대와 가장 비슷한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50년 동안의 시기가 좋은 후보로 꼽힌다. 이 시기는 어떤 면에선 철학적 전성기 중 하나에 속한다. 고대 이전에는 기원전 3세기 초의 아테네만큼 그렇게 좁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철학자가 활동한 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세상을 알라’에서)

그에 따르면, 철학의 시작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등 문학작품을 통해 삶을 이해했던 고대의 생활방식에 변화가 오면서 시작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신과 영웅관에서 벗어나 삶을 이해하는 새로운 틀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즉 로고스, 이성의 출현이다.

프레히트는 이성의 출현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혁명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신과 영웅의 빈자리를 대체한 이들을 프레히트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라고 부른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이다. 서양철학사의 태동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현대철학의 기원은 플라톤에 가 닿는다. 영국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유럽의 철학 전통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했을 정도로, 플라톤의 영향은 막대하다. 프레히트는 플라톤이 지닌 이런 큰 의미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생애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게 많지않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부분이라며, 플라톤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그의 태생과 관련이 있다. 그의 고향 아테네는 제2차 아테네 해상 동맹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한 폴리스로 부상했고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도 안정을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생각이 달랐다. 그에겐 도덕적으로 타락한 곳, 근본적인 개조가 필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귀족 보수출신인 플라톤이 보기에 아테네의 화폐경제는 온갖 부패의 온상이며, 사회 타락의 주범으로 여겨졌다.

이런 사회를 구원할 혁신적인 방법으로 플라톤이 제시한 건 과거 전통적 귀족 윤리로의 회귀다. 플라톤에게 행복은 개인적인 선한 삶에서만 실현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이상국가의 핵심이다. 그곳에서 시장과 임금 노동, 경쟁과 권력 다툼이라는 도덕적 타락은 없다. ‘오이코스’로 대변되는 사적 이익은 이상 국가의 적인 셈이다. 플라톤은 교육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귀족적 보수주의자 플라톤이 금융 시장 조절, 이자 철폐, 양성평등 보장, 아이들에 대한 철저한 국가 교육, 명예만을 위한 지도자의 통치 등 오늘날의 급진적 국가 사회주의를 표방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사이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사유재산을 옹호했다. 그는 사유재산이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며, 사치와 과시는 악덕이지만 절도 있는 풍요는 도덕적 삶에 기여하고 물질적 재화에 대한 욕망은 국민 경제 전반에 유익하다고 봤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 살림, 즉 오이코스의 세계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가정살림을 하는 이들은 시골에 농장을 갖고 자급자족을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런 자급자족 가정살림이 경제에 좋고 적합한 형태라고 봤다. 남은 작물은 물물교환 혹은 돈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형태의 경제 행위를 ‘오이코노미케’라 불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버는 것이 교환 경제의 목적이 된다면 오이코노미케가 변한다고 봤다. 즉 가정살림의 기술이 ‘돈 버는 기술’로 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화폐경제의 ‘자본주의적’ 규칙들을 분석하고 명명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한다.

쾌락의 윤리로 알려진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대한 분석은 흥미롭다.

프레히트는 “에피쿠로스 철학은 쾌락을 얻는 철학이 아니라 고통을 피하는 철학”이라며, 에피쿠로스가 이해하는 철학은 일종의 심리치료라고 말한다, 목표는 평정심이라는 안정적인 영혼상태다. 방법은 삶의 태도를 꾸준히 바꾸는 것. 에피쿠로스에게 자신의 삶을 바꾼다는 건 플라톤처럼 도덕적이고 정의로워지는 게 아니다, 식생활부터 성생활, 부에 관한 생각까지 삶의 방식을 철저히 바꾸는 걸 의미한다.

작고 일상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기쁨을 얻는 훈련을 한 사람은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살 만한 것으로 바꾸어 주는 신비한 현자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에피쿠로스의 쾌락 윤리는 현재 유행하는 트렌드인 ‘소확행’과 얼핏 닮아있다.

철학을 ‘단순히 지식 영역이나 특수 분야’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좀 더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책 제목 ‘세상을 알라’는 인간이 주변 세상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레히트는 르네상스, 바로크, 계몽주의 등 이후의 삶의 변화를 2권에서 이어간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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