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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캐나다 엔지니어의 ‘철반지’ Iron Ring
캐나다의 엔지니어들은 오른손이나 왼손 중 주로 사용하는 손의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는데, 이런 전통은 1925년에 시작되어 벌써 90년이 넘었다. 반지는 대학 졸업 때 ‘엔지니어의 소명 의식(The Ritual of the Calling of an Engineer)’이라는 수여식을 통해 전수된다.

반지는 엔지니어라는 직업의 자긍심을 상징한다. 또한 그들에게 늘 겸허함을 잊지 말라는 의미와 함께 높은 기준이 요구되는 엔지니어의 직무상 의무를 상기시키는 역할도 한다.

특히 반지의 면이 각이 지게 세공되어 있는데, 엔지니어들이 도면 작성이나 글씨를 쓸 때 반지가 바닥에 긁히면서 그들이 잘못된 선을 그리거나 계산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그 잘못과 오류가 초래할 참담하고 엄청난 결과를 한시도 잊지 말라는 뜻에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반지와 수여식이 만들어진 계기는 퀘백교(Quebec Bridge)의 붕괴 사고였다. 퀘백교는 1907년, 1916년 두 번이나 붕괴되면서 각각 작업원이 75명, 13명이 사망하였는데, 계획 부실(Poor planning), 비숙련 엔지니어(inexperienced engineers), 비용절감공법(cost-cutting measures)등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사고 이후, 캐나다 엔지니어링 협회가 몇몇 작품에서 엔지니어의 업무에 대해 다루었던 ‘정글북’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 시인 ‘키플링 (Rudyard Kipling)’에게 의뢰하여 엔지니어의 소명을 일깨우는 수여식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1차로 붕괴된 퀘백교의 잔해로 반지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스테인리스 재질로 바꾸었지만, 교량 붕괴사고를 계기로 모든 엔지니어가 그 사고를 잊지 않고 직업적으로 높은 윤리의식과 의무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서약의 의미는 그대로다.

미국도 이 제도를 본받아 1970년부터 대학 졸업 때 비슷한 반지(Engineer’s Ring) 수여식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에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93년, 78명 사망), 서해페리호 침몰(’93년, 292명), 성수대교 붕괴(‘94년, 32명), 삼풍백화점 붕괴(’95년, 501명),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95년, 101명)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90년대 중반에 수많은 참사를 집중적으로 겪으면서도 우리는 위령탑을 세워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데 머물렀다. 그나마 위령탑 위치도 알기 어렵고, 사고는 희생자 가족들만의 아픔으로 반추되는데 그치고 있다.

우리는 ‘키플링의 반지’처럼 참사와 관련된 직무관계자나 전문가 그룹들이 사회적 소명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각성으로 늘 몸과 마음에 지닐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들거나, 반지 수여식 같이 이를 정례적으로 되새기는 의식(儀式)으로까지 승화시키지 못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우리가 대형 참사를 반복해서 겪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대부분 ‘안전불감증’이 사고의 원인인데, 사람들은 참사를 겪고서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나쁜 기억일수록 빨리 지워버리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 이를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의 안전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재난ㆍ사고의 위험에 대해 늘 잊지 않고 긴장해서 자기 업무에 임해야 한다. 꼭 엔지니어에 국한되지는 않을 게다. 누구든 안전 관계자는 ‘키플링의 반지’를 끼고 자신의 직무에 대한 긍지와 함께 자신의 방심과 실수, 무지와 오류, 부정과 비리가 이 사회에 초래할 참담한 결과를 잊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세월호 본체 보존방식을 논의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대형 참사까지 잊지 않고 상기하여 더 이상 유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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