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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스파이어] ”망할거면, 나처럼 망하세요”

[이정아 기자의 인스파이어]


국내 개인종합소득세 랭킹 1위, 그러나 외식업계 대표 아이콘 추락. ‘들어먹은’ 사업만 열 개, 10전 10패. 빚더미. 직장암, 간암, 폐암에 이은 급성심근경색….

찬란한 성공과 끈질긴 실패를 마주하며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본 한 사업가가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기구한 운명에 신을 원망하며 세월을 보내거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삶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나쁜 생각’에 빠졌을 텐데 그는 달랐다.

“실패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일어나지 않고 계속 엎어져 있으면 그게 진짜 실패다 이겁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예요.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으며, 좌절을 헤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실패학’ 강의를 준비하는 성신제 씨를 다섯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망할 거면, 나처럼 망하라"고 했다.


#. 돌아보면, 달콤한 인생

피자의 ‘피’도 모르던 1984년 대한민국에 성신제 씨는 외국계 피자브랜드를 처음 들여왔다. 나이 서른넷, 자금 7만2000원으로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이었다. 점포는 52개까지 늘어났고 매출액은 500억 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1993년 본사에 경영권을 양도한 후 그가 낸 개인소득세는 110억 원. 그는 ‘돈 세다가 잠 못 잘 정도’로 잘 나가는 외식업계의 신화였다.

그러나 부침도 심했다. 이후 시작한 치킨전문점 ‘케니 로저스 로스터스’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도산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피자 브랜드 ‘성신제 피자’로 재기에 성공하며 창업의 신화를 쓰는 듯 했지만 2007년 외환위기 속에 최종 부도를 맞았다. 집 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그는 아이 돌반지까지 내다 팔았다고 했다.

그리고 2015년. 그는 68세에 컵케이크 전문점으로 다시 한 번 재기에 도전했지만, 1년 반 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 열번째 실패였다. 그의 지나온 삶은 성공과 실패로 점철된 인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가만 돌아보니까 1등 못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2등, 3등, 4등 쭉 내려가서 수없이 많은 그 사람들의 인생은 다 버린 인생인가요? 어, 이건 아니다. 나라도 나서서 떠들어야겠다.”



#. ‘실패 아이콘’, 실패를 드러내다

“스스로 ‘실패 아이콘’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가까운 가족들이 성신제 씨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건강 챙기며 남은 여생 편안하게 지내라고 조언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늘 고개를 저었다. 실패는 자신이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말한다. ‘What else?’,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그는 넘어졌을 때 마냥 드러누워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베스트셀러라는 자기계발서 책을 읽다 보니까 화가 나더라고요. 정말 어려움에 닥친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기 실패 경험을 말하는 책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나같이 힘든 사업가가 이 땅에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내 실패를 온전히 이야기해보자고”

그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떳떳하게 자신의 실패를 드러내기로 했다. 그래서 자신의 실패들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실패담을 책으로 냈다. 실패를 주제로 강연도 나가고 있다. 그는 삶의 가장 큰 영예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빙긋 웃어 보이며 “지나온 모든 시간을 사랑한다”고 전했다.


#. 실패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은 사람

두 번째 사업이 파산한 뒤 2011년에는 암이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암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80㎏ 정도를 유지하던 체중이 순식간에 57㎏까지 줄었다. 근육은 두 달 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남은 시간이 6개월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유언장을 쓸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야지 생각이라도 하자 싶었어요. 그래서 마취 직전에 의사 선생님을 부르고 말했죠. 예쁘게 꿰매 달라고. 다들 크게 웃으시더라고요. 뭐, 병원 가서 검진받고 또 뭐 생겼다고 하면 수술받으면 되지, 뭐 어떡하겠어요. 그게 인생인데.”

그는 꿈을 꾸라고 했다. 그러나 그 꿈은 십중팔구 실패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가 덧붙였다. “그렇다고 꿈을 접어두고 살아가기엔 인생은 길어요. 너무 길어요.”

인생 3막을 준비하고 있는 성신제 씨.


#.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이 있다고 했다. 나이 일흔하나지만, 형형한 눈빛을 내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차분하게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있어요. 주변에서는 ‘그렇게 쓰러지더니 이제 돌았구나, 차분하게 뭘 준비해?’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 가서 정통 피자 만드는 법을 배워올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음식도 고객도 살아있는 레스토랑을 차릴 거예요.”

이어 그는 언젠가 자신의 묘비에 쓰고 싶다며 글귀를 읊었다. 그의 웃음 섞인 호탕한 목소리가 내 귓전에 맴돌았다.

“‘그 사람 앞에 주어진 운명은 처참했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제가 그렇게 많이 쓰러졌지만 떳떳하게 제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실패에 나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을 다시 돌아봐도 후회가 없어요. 하하.”




우리는 언제나 성공만을 강조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도전해보자라고 말을 건네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헤럴드의 뉴미디어 ‘인스파이어’는 실패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 기획으로 전합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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