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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책] 1할의 깨달음ㆍ10할의 그리움, 그것을 시(詩)로 담다
-경제지 언론사 데스크가 쓴 생활시집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빨리 사라질까’
-김영상 지음…누구나의 자전적 고백 시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그땐 젊었으나 가난했고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후암동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중략)
지금 역시 가난하지만 욕심은 줄었나보다
젊은 날 보이지 않았던 후암동의 비경
그게 가슴에 와 닿는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게 인생인가 보다”<후암동에서 1>

아침 출근길, 오늘따라 새들이 유난히 재잘거린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어제보다 조금 커진 목련꽃 봉오리가 눈에 들어올 때, 남산이 유난히 가깝게 보이는 화창한 날임을 깨달을 때, 누구나 왠지 모를 감성에 빠져든다. 그런 감성은 각박한 우리 삶을 지탱시켜주는 힘이자, 어찌보면 시(詩)라고 할 수 있다. 바쁜 일상, 허덕이는 일상 속에서 예전에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이나 생기발랄함을 다시 발견한다면 그건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생을 지탱해주는 여유라 할 수 있는, 그 행복은 바로 시심(詩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빨리 사라질까’(김영상 지음ㆍ북오션 출판사) 시집은 일상에서 순간순간 얻은 소소한 감성을 길바닥에 버리지 않고, 가슴으로 저금한채 그걸로 글로 꾸몄다.

시집은 일상을 끄적거리듯 써내려간 생활 시(詩)다. 메타포(은유)나 함축, 미사여구는 없지만 소시민 감성을 담담하게 써내려 갔다. 그게 묘하게 울림을 준다.

저자 김영상은 시인이 아니다. 언론사(헤럴드경제)에서 20년 이상을 기자로 일했고 몇 권의 책을 냈지만, 시를 공부한 적은 없다. 어렸을때 잡지사에 시 몇편을 응모했고, 수상자 리스트에도 못낄 아주 작은 상 한두번 받은 게 전부다. 그러니 시집에서 시인의 체취를 느끼려는 것은 욕심이다.

저자가 “시가 뭔지도 모르며, 일상에서 느꼈던 것을 형식에 구애 없이 담담히 풀고 싶었을 뿐”이라며 “감히 훌륭한 시의 호수에 돌멩이 하나 던진 것 같아 부끄럽다”고 고백한 이유다.

그러나 시를 읽다보면 ‘묘한 공감’이 있다. “어, 내가 살아온 느낌과 비슷하네”, “내 생각도 그런데”, “나도 그런 추억이 있는데” 등의 생각을 들게끔 하는 것이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다.

시의 주제가 두메산골 어린시절 추억부터 첫사랑에 대한 가벼운 떨림과 회한, 언제부터인가 아름답게 보이는 주변과 그들의 따뜻한 시선, 나무와 꽃 얘기 등 우리 일상을 소재감으로 썼기에 어색함이 한층 덜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다보면 ‘나 자신의 얘기가 아닐까’ 하는 묘한 향수에 젖어들게끔 한다.

저자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일종의 자서전적 이야기라고 했다. 붓 가는 대로 쓴, 일종의 수필 색깔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부뚜막 아궁이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 추억을 잊을 수 없다. 매미와 대추나무, 우물에 빠져 죽음 직전을 경험한 일, 어설픈 첫사랑 등 지금은 그리움이 된 일을 회상이라는 이름으로 그린다. 중2병 걸린 딸과 아내와의 일상을 통해 예전에 있었던 평범한 가족 얘기도 들려준다.

가난, 욕심, 탐욕, 후회, 반성, 깨달음 등은 이 시 키워드다. 1987년 소시민으로서의 나약함 등 우리 사회 어려웠던 시절에 느꼈던 소회도 담았다. 그러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낯선 소재는 아닐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키워드들이 꼭 두메산골에 태어난 이, 척박한 시대를 거쳐 온 사람, 중년 이상이 돼서 옛 회한을 간직한 이들 만이 아니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공감능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저자만이 아닌 누구나의 자서전 같기도 하다. 동시대 공감 능력이라고만 표현하기는 뭔가 아쉬운, 우리의 보편적 정서를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저자는 과거, 현재의 눈을 통해 우리 보편적인 정서를 일상 스토리에 담아 시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시(詩)는 고매한 영혼의 전유물임을 믿어왔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영롱한 시의 호수(湖水)에 투박한 돌멩이 하나 던진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소년시절의 감성, 젊은 날의 객기와 꿈, 나이 들수록 예뻐 보이는 주변 등 삶의 단상을 감히 시로 표현하고 싶었다. 20년 이상의 경제지 기자 인생. 숫자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지만, 늘 시적 감성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왔다. 가슴을 촉촉이 물들이는 시 구절, 그걸 늘 손에 쥐고 있는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니까.”

시집을 내면서 저자가 내놓은 부끄러운 고백이다.

저자의 시적 감성은 어쩌면 어중간한 깨달음이고, 어중간한 여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옛날에 대한 그리움은 시 전체에 빼곡하게 흘러 넘친다. 시집 몇페이지 읽다보면, 어쩌면 그 어중간한 깨달음이 본인의 얘기일 것이라는 착시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저자는 만족한다고 했다.

저자 김영상은 현재 헤럴드경제 소비자경제섹션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아웃라이어들(2013), 반상위의 전쟁(2016), 대한민국 미식보감(2017) 등이 있다.

북오션 출판사, 초판 2018년 5월 4일 발행, 135×195mm, 224쪽, 15000원. 사진은 송양용 작품.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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