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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 한편 보면 한국 예술수준 다 보여”
윤호근 국립오페라단 단장 인터뷰
오페라는 서양의 유산
한국것만 고집해서는
정체성 가질수는 없어

오페라의 중심은 언어
한국어로만 표현 가능한
우리 고유의 소재 개발
전세계에 소구력 갖는
아름다움 표현해야…


그는 나비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그것도 연두색. 너무도 완벽하게, 단단하게 매서 단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넥타이를 매듯 마음을 졸라 맨다”고 했다. “단장으로 오면서 내 퍼스낼리티(개성)가 사라졌다. 심리적으로 오페라를 더 많이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는 설명도 따라왔다.

지난 2월 취임한 윤호근(51)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을 헤럴드경제가 최근 만났다. 취임 후 첫 오페라인 ‘마농’을 마치고 나서다.

워낙 대작인데다, 29년만의 전막(5막) 공연으로 부담이 컸지만 무난하게 마무리 됐다고 자평했다. 윤 단장은 단장의 공백이 길었던 국립오페라단 내부 조직을 추스리는 한편 ‘오페라’의 가치를 알리는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연극, 성악, 오케스트라, 드라마, 발레, 미술 등 다양한 예술장르가 섞여 정점을 이루는게 ‘오페라’이기에 한국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윤호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겸 단장 [제공=국립오페라단]

더불어 한국형 오페라를 고민하고,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아래는 일문일답.

취임후 바로 이어진 공연, 무척이나 바빴을 것 같다. = 프랑스 오페라인 마농은 전체 5막의 대작이다. 러닝타임도 3시간이 넘는다.

이 작품은 취임 전 이미 결정이 돼 있었고 캐스팅도 완료된 상태였다. 내 역할은 연출가, 지휘자, 출연자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 관객들은 원본이 가급적 그대로 재현돼 무대에 오르는걸 선호한다. 연출가도 이 지점을 잘 이해하고 시각적으로 잘 보여줬다. 취임후 수면시간이 하루 3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그만큼 일이 많다(하하). 다행히 4월중엔 올 연말까지 공연할 작품과 주요 캐스팅을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 6월 중엔 내년에 올릴 작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동양인 최초 베를린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부지휘자 역임 등 경력이 화려하다. 본인의 강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제 커리어 대부분이 유럽이다. 작은 극장부터 큰 극장까지 거치며 그쪽 시스템을 잘 안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지휘하며 이곳의 시스템도 알게 됐다. 두 곳을 잘 안다는 걸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최근까지 유럽에서 활동했기에, 지금 누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메인스트림에서 누가 뛰어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초대하기도 수월하리라 생각한다. 오페라는 서양의 유산이다. 한국 것만 고집해서는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 소스는 늘 그곳에서 온다. 따라서, 서양 가수가 한국무대에 선다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국제 교류의 단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캐스팅은 한국성악가 위주로 할 생각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 무대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 오페라도 개발하겠다고 했다. 우리 오페라를 가지고 국제무대에 서야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서양 레퍼토리로 그들 무대에서 주류로 편입되긴 힘들다. 우리 레퍼토리로 승부해야한다. 3년간 총 30억원의 예산이 한국 오페라 제작에 투입된다. 오페라 창작을 위한 기금이다.

현재는 투트랙으로 가고 있다. 기존 창작 오페라 중 하나를 뽑아 지원하는 방향과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방향. 둘 다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오페라는 작곡가 개인이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모든일을 접고 이것에만 매달려야 겨우 (창작이)가능하다. 연출, 무대, 기악곡, 가곡 등 고려해야할 요소가 너무 많다. 작가들이 써 놓은 연극대본을 성악으로 바꾸는 대본가도 필요하다.

대본을 보고 작곡가가 음악을 입히고, 오케스트라도 짜고, 연출가도 이에 맞춰 계획을 세워야한다. 심지어 출연자들의 동선도 염두에 두어야한다. 오페라의 거장으로 꼽히는 베르디도 7번째 작품(맥베스)을 발표 하고서야 인정받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개를 써 봐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뜻이다. 국가 지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에 앞서, 우리는 왜 오페라를 봐야하나하는 의문이 생긴다.=오페라는 종합예술장르다. 고전적 설명이긴 한데, 가장 적합하다. 연극, 성악, 오케스트라, 드라마, 발레, 미술 등 다양한 예술장르가 섞여 정점을 이루는게 오페라다. 달리 말하면 오페라 한 편으로 한국 예술의 수준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만큼 파워풀하고 핵심적인 장르다. 다만, 아직 한국은 ‘오페라 문화’라고 부를만한 상황이 아니다. 국립단체에서 일년에 6개, 사립단체에서 1~2개 무대를 소화하는 실정이다. 더 많은 무대가 필요하다.

한국 오페라라는게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가.=한국의 정체성을 담아내겠다는 뜻이다. 민족주의와 연결시키는게 아니라. 오페라의 중심엔 언어가 있다. 25년 외국생활을 하면서 독일어가 더 편할때도 있다. 그러나 독일 사람만이 갖는 어감의 섬세한 표현은 따라 할 수 없다. 그저 머리로 이해하는 거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예로 들면, 특정 음이 재현부에서 왜 달라지는지 이론으론 이해하지만 정서적으론 이해할 수 없다. 독일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이 풀려나가는 거다. 한국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어 대사 하나 바뀌면 음도 바뀌는 이유를 한국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리움이라던가 한이라던가 이런 표현과 감정은 한국사람들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 즉 다른 어떤 언어나 나라에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소재를 개발해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은 전 세계적 소구력을 갖는다. 그게 예술의 힘이다.

상당히 긴 호흡의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1~2년 하고 끝날게 아니다. ‘국립’오페라단이 꼭 해야하는 일이다. 의무다. 작곡가가 선정되면 소통을 많이 할 생각이다. 연출가 선정, 대본가 선정도 함께 할 생각이다. 극장 규모까지 고려해서 제작하고 싶다. 관객 평가도 받을 예정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한국 오페라의 정체성을 더 잘 찾으리라 생각한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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