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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로 당한이후 먹고 또 먹었다…몸집이 커지면 안전할거란 생각에
“어떤 소년들이 나를 파괴했고 나는 파괴 현장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와 같은 폭력을 또 다시 겪으면 살 수가 없을 것 만큼은 확실히 알았고 나의 몸이 역겨워지면서 남자들을 멀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다.”

페미니즘 열풍을 몰고 온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 록산 게이의 자전 에세이 ‘헝거: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사이행성)은 이렇게 시작한다.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두 살, 어린 나이에 그가 선택했던 건 매력적이지 않은 몸매를 만드는 일, 추가의 피해를 차단하는 수단으로 스스로 살을 찌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몸은 축적돼가며 261kg으로 불어났다.


그의 인생은 비포, 애프터로 갈라졌다. 몸무게가 늘기 전과 후, 강간을 당하기 전과 후로 완전히 나뉘게 된다.

몸의 회고록이라 이름붙인 책은 몸의 기억과 흔적을 낱낱이 기술한다. 두루뭉수리한 언어로 넘어갈 법도 한 ‘강간 사건’도 그는 상세하게 적었다. “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이 경험한 것을 경험한 한 여성일 뿐”이라며, “굳이 내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이유는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의 고백 가운데 더욱 절절한 건, 강간을 당한 뒤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소년들이 지어낸 각기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 진실은 왜곡됐고, 여자아이의 말은 그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걸 어린 그는 알았던 것. 하지 못했던 그 말은 침묵이라는 독으로 그의 몸에 퍼지게 된다. 몸집이 커지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먹고 또 먹는 이상행동은 그렇게 시작된다. 거구가 된 몸은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뚱뚱한 몸’에 대한 세상의 혐오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자신의 욕된 몸을 다시 찬찬이 들여다보는 행위는 그로선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힘든 시간이자 성찰의 과정이 된다. 기형적인 몸, 상처투성이의 몸을 스스로 어떻게 인식해 나가는지 힘겨운 시간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깊은 공감과 감동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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