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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석의 목공이야기]목수와 신기전
지난 설 명절때 TV를 켜자 마침 영화 ‘신기전’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 그래, 저걸 만든적 있지. 무형문화재 소목장 김창식 선생님 전수생 시절인 2007년 쯤인걸로 기억된다. 어느 날 선생님이 육군으로부터 신기전을 복원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지금은 소목장하면 대개 가구만 만드는 줄 알지만 예전엔 농기구와 생활소품까지 안만드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러고보니 목수들은 중요한 무기제조자였다. 거북선을 비롯한 전함이 목수없이 완성될 수 없고 석궁의 일종인 쇠뇌도 중요한 작업은 목수의 몫이었다. 특히 포를 싣고 다니는 화차는 견고함과 정교함을 겸비해야하는 고난도 작업으로 목공 기술의 결정판이었다.

신기전은 다연장로켓포의 역할을 하는 포탑이 상부가 되고, 하부는 수레 행태로 결합된 구조다. 재현품은 옛것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상상하며 만들면 안 된다. 그래서 나무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야산에 흔한 참나무와 소나무를 썼다.

다행히 신기전은 병기도설 등에 옛 설계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도 제작은 처음부터 난관 투성이였다. 육군에서 전해준 도면은 모두 조선시대 도량법(세종척)으로 기록된 복사본이었다. 난감했다. 결국 육군박물관의 연구원이 모든 치수를 미터법으로 바꾼 후에야 제작이 시작됐다.

신기전 만들기의 첫 시작은 1대1 도면 그리기다. 선생님은 나무 콤파스를 만든 후 커다란 합판에 지금의 타이어에 해당하는 바퀴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큰 바퀴를 둥글게 깎는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워낙 큰 원이니 전체를 12개로 나누고 그에 꼭맞도록 실제 나무를 깎아 가장 단단한 짜맞춤 형태인 나비장으로 서로를 고정시켜야 한다. 바퀴의 중심축인 바퀴통은 목선반으로 특수하게 깎아 십자장부로 결합하고 바퀴살로 바퀴테와 연결한다. 격한 전쟁 상황의 충격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무기의 짜맞춤 장부는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가구와 전혀 다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바퀴의 마모를 막기위해 쇠둘레까지 씌워야 한다. 오직 바퀴하나 만드는 작업이 이처럼 복잡하다.

여기에 수레 손잡이는 길이 3m 이상에 두께는 10cm가 넘는다. 신기전이 나가는 화살통은 반원을 정밀하게 깎아 마주보도록 결합해 원통을 만든다. 소나무통속에 마치 자동차 실린더 수십개가 질서정연하게 자리한 듯한 모습이다. 완성된 수레에 화살통을 얹고 두석장들이 만든 장석을 붙인 후 궁시장의 화살까지 메겨 신기전이 완성됐다. 지금 육군박물관에 전시된 신기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납기를 맞추느라 비오는 날 결합 작업을 하는 바람에 습기를 먹은 나무들을 끼워맞추는데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건 도대체 가격이 얼마일까? 조심스레 여쭤봤다. 선생님은 말씀이 없다. 재료비도 안되는 모양이죠?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에 허탈함이 묻어났다. 두 달이나 걸린 일인데 나무값도 안된다니….

나랏일이고 당대 최고의 목수중 한사람으로 역사적 유물을 재현한다는 자부심외에 인건비는 전혀 없었던 셈이다. 그때 보수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아마도 스승님이 점심 때 자주 외식하자고 하셨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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