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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ㆍ관 통상 홀대론이 빚은 참극…통상전문가가 없다
- 정부 부처에 통상 전문가 부재
- 경제단체도 통상 인력ㆍ조직 부족
-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 기업 홀로 고군분투 처지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미국의 통상 압력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대응에 분명 한계가 있고,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정부의 대응 능력에 우려가 큽니다. 일본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외교ㆍ통상 라인의 역량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경제단체 고위 관계자)

미국과의 동맹 국가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한국이 미국의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 현 정부의 ‘통상 홀대론’이 한 몫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통상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에 통상전문 인력이 전무한 것은 물론 부처 간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통상 조직이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가전, 철강에 이어 반도체까지 가시권에 들어선 미국의 전방위적인 통상압박에 국내 수출 기업들은 홀로 고군분투해야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뒷전으로 밀린 통상 전문성, 거세진 후폭풍=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조사에서 53%의 높은 관세를 부과할 대상에 캐나다, 일본, 독일 등이 빠지고 한국이 포함된 주요 원인으로 ‘외교ㆍ통상 역량 부족’이 꼽히고 있다.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주요 선진국들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자국의 외교통상 라인을 강화하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데 공을 들인 반면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통상 문제에 둔감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본은 최근 미국의 통상압박을 주도하고 있는 월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이 취임하기 전부터 관계를 탄탄히 다져왔다.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6년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의 경제 자문이던 로스 회장을 따로 만나 회담을 가졌다.

반면 우리 정부는 미국이 작년 7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요구한 뒤에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임명했고, 작년 11월에는 통상교섭본부가 조직과 인력 증원을 행정안전부에 요청했지만 3개월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통상 기능’ 홀대는 관련 정부조직의 최고위층 면면에서부터 예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ㆍ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에서 국제경제 전문가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의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 박종규 재정기획관, 김현철 경제보좌관 중에서 국제경제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재정) 전문가다. 통상담당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백운규 장관은 세라믹공학을 전공한 교수 출신이다.

발목 잡는 조직 체계, 민간 영역도 ’통상 홀대‘= 통상 조직의 역량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도 문제다.

과거 외교부 산하에 있던 통상교섭본부가 지난 정권부터 산업부로 이전되면서 장관급(통상교섭본부장)이던 조직이 차관보로 격하됐다.

적은 인원과 전문성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통상교섭본부 정원은 279명이지만, 통상 업무만 담당하는 인원은 164명이다. 이 중 대부분은 순환 보직으로 이동이 잦다. 미국의 통상 교섭을 책임지는 무역대표부(USTR)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200~300명 규모의 통상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작년부터 통상 기능을 다시 외교부로 이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부처간 이해관계로 무산됐다”며 “최근 미국의 통상 압박이 거세지는 상화에서 통상 기능의 재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민간 영역에서도 통상 부분의 중요함을 간과해온 것이 사실이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법무팀의 구성을 대부분 공정거래 전문가들로 꾸리고 있다. 통상 이슈와 관련해서는 기업 자체적인 대응보다는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 내 법률 전문가들은 대부분 공정거래 분야와 관련이 높다. 기업 자체적으로 통상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재계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에는 별도의 통상 조직이 없다. 일반 경제정책부서에서 기업들의 통상 민원을 처리하는 수준이다. 통상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뤄야 할 무역협회는 통상 인력과 조직이 계속 축소돼왔다. 그나마 무역협회는 작년 11월 김영주 회장 취임 후 통상현안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위해 통상 인력과 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통상지원단을 신설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국제통상학부 교수)은 “(통상 전문인력이)부족한 것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어서 현재 있는 인력풀이라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은 통상 문제와 관련해 정부 의존이 너무 높기 때문에 자체적으로도 통상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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