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한빛의 현장에서] 폭로로 드러난 처참한 문화계 민낯…본질은 권력형 성범죄
21일 밤 10시 극단 고래 연습실에선 ‘미투(me tooㆍ나도 말한다)’ 운동과 관련, 연극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 등 성추행,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법적 죄책을 포함,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마련된 이 모임은 일반인은 물론 취재진의 참여가 금지된 비공개 모임으로 진행됐다.

회의측은 “연극인의 연대를 기반으로, 피해자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법리적인 정보를 얻는 자리”라고만 밝혔다. 피해자들의 법적대응이 가시화 되고 있다. 성폭력 미투에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 인간문화재 하용부 등의 진정성없는 사과와 침묵에 눈을 감지 않겠다는 대응이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19일 공개 기자회견을 자청해 “잘못했다 법적 처벌을 달게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했다. 성관계는 있었으나 강제성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과 이후 여론은 되레 악화됐다.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난과 함께 임신ㆍ중절ㆍ안마콜의 조력자가 김소희 대표라는 등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사태가 계속 악화되자 연희단거리패 내부자의 증언도 나왔다. 자신을 ‘개XX’라고 칭한 배우 오동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윤택 전 감독이 기자회견 전 리허설을 했고, 극단 수뇌부가 회의를 거듭하며 방어논리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표정 하나 손 동작 하나까지 모두 ‘연극’이었던 셈이다.

제자와 연극인들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연극연출가 오태석은 사건이 불거진 후 단 한마디 입장발표 없이 22일 현재까지 잠적 상태다. 오태석은 연락두절 상태이며, 그가 속한 극단 역시 전화연결이 어렵다.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알려진 시인 고은도 아무런 입장 발표가 없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는 배우 조민기도 처음엔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다 하루 만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어른’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십수년간 이런 사태가 지속됐는데도 그동안 문화계는 침묵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예술계의 폐쇄적 구조를 원인으로 꼽는다. 사제관계로 출발한 인연이 사회로도 이어져 직장 상사-직원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특히 연극계의 경우 연극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연출을 중심으로 군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수직적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폭력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 권력관계의 최하부에 위치하기 마련인 어린(여자)배우들이 대표적 희생양이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는 선배들도 권력형 성폭력에 일조했다는 자책이 일고 있는 건 다행이다.

이런 폭력의 구조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내부의 문제니 내부에서 해결하겠다는 논리로는 전체 시스템을 개혁할 수 없다. 드러내 놓고 도려내야할 부분을 떼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설유진 극단 907대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미투(me tooㆍ나도 말한다)’를 독려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극계에 만연한 폐쇄적 권력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들, 특히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폭력인가 되짚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건강한 시스템은 침묵하는 방관자가 아닌 행동하는 참여자로 완성된다.

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