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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한 학년의 5분의 1이 컬링대회에 나가는 그곳, 의성
[헤럴드경제 TAPASㆍ의성=신동윤 기자ㆍ김보희 PD]"어! 의성 알지. 의성마늘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기자가 주변사람들에게 출신지를 이야기하면 되돌아오는 대답의 8할은 이랬어. 심지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품 육쪽마늘도 아닌, 국내 한 식품업체가 생산해 판매한 햄이 마치 의성의 특산품인 것처럼 말이지.

그나마 의성과 육쪽마늘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안동에서 한 시간 가량 남쪽으로 가면 있다는 설명을 기자가 하고나면, 꼭 한 마디씩 덧붙여.

“이야~ 진짜 시골에서 올라와서 출세했네.”

그러던 의성이, 기자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컬링수도’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최근 핫하다니. 허허 참.

의성여고 정문에 걸린 현수막. 컬링소녀 4인방은 누가 뭐래도 의성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자랑거리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사촌동생 #알고보니_국대친구

역시 의성은 서울과 다르게 좁아. 한 다리만 건너도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여자 컬링 선수와 연결이 됐지. 지금도 의성에 살고 있는 기자의 사촌동생이 김경애, 김선영 선수의 의성여고 시절 동창이라는거야.

“오빠야. 2010년 경북도지사배 대회가 의성에서 열렸는데, 나도 선수로 나갔었다. 그 때 전문선수팀으로 나온 경애, 선영이랑은 상대팀으로 만났었고.”

사촌동생은 의성여고 2학년 재학 중에 방과 후 수업으로 컬링을 배웠대. 2주간의 맹연습 끝에 나간 이 대회에서 심지어 3위에 입상하기도 했었고 말야. 다들 청소할 때 대걸레질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는게 사촌동생의 설명이지. “얼음판 자체가 거칠거칠한데다 조금만 잘못 보내면 잘 안가. 생각보다 섬세하고 어려워. 머리도 써야하고.”

이어 사촌동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왜 의성이 컬링 메카로 불리는지 충분히 이해시켜줄만한 내용이었어. 당시 경북도지사배 대회에 여섯팀이 참가했는데, 그 중 네 팀이 의성여고 AㆍBㆍCㆍD팀이었다는 거야.

4명이 한 팀을 구성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총 16명이 컬링 선수라는거지. 수가 적다고? 의성여고 한 학년은 100명도 되지 않는 걸. 한 학년의 5분의1이 컬링선수로 대회에 참가하는 곳이 바로 의성이야.

의성여고 로비에는 각종 전국대회에서 획득한 컬링 트로피들로 가득 차 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경애랑 선영이한테 그렇잖아도 엊그제(18일)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응원 카톡 보냈거든. 2년전에 전화한게 마지막 통화였는데. 이제 많이 유명해지기도 하고, 경기 뛰느라 정신 없어서 답장하기 힘들겠지?”

이렇게 기자에게 말하는 사촌동생의 얼굴에선 ‘잘 나가는’ 친구를 둔 뿌듯함이 대번에 느껴졌지.

#컬링은_운명 #할매_할배도_컬링_사랑

의성사람들의 피 속에는 컬링 친화적 유전자가 흐르나봐. 여태 동계스포츠라고는 1도 관심이 없었던 기자의 할머니. 의성에 사시는 80대 중반의 할머니는 TV에서 나오고 있는 컬링 중계방송을 보며 이렇게 말했지.

“얘야. 저기 다른 돌 튕겨내는 저 운동이 정말 재미나더라. 나는 다른 경기를 봐도 무엇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컬링인가 저것은 정말 나한테 딱이더라."

그렇게 이야기하시고는 컬링경기에 푹 빠지셨어. 기자가 리모콘을 잘 못 눌러 다른 채널로 돌렸더니 할머니는 대번에 “돌 튕겨내는 경기가 왜 TV에서 안나오니? 얼른 채널 다시 돌려봐라”라고 하시지 뭐야.

컬링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마을회관에서는 잔치가 열린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건 비단 기자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대한민국과 미국의 여자 예선 세션 10 경기가 펼쳐진 20일 오후 의성은 뜨겁게 달아 올랐지.

김경애, 김영미 자매의 고향 마을인 의성읍 철파리 마을회관은 한바탕 잔치가 열렸어. 문 밖에 걸린 솥 안에선 수육이 익어가고, 다 같이 모여있는 할매, 할배들은 컬링 얘기 삼매경이셨지.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컬링 시간이면 항상 TV 앞에 앉아서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선수들이 여기 철파 출신인데 안 볼 수 없지"

동네 어른들은 경애, 영미 자매의 집안 이야기도 들려줬어. 동네주민 조모(70ㆍ여) 할머니는 “애들 엄마가 남일 도와주며 번 돈으로 시어머니 모신다고 고생이 많았지. 마을사람들 모두 경미 엄마가 늦게라도 복 받는거라고 그래”라고 했지.

경애, 영미 자매의 어머니는 지난해 가을에 철파리를 떠나 읍내 아파트로 이사갔다고해. 

20일 오후 의성여고 체육관에서는 의성여고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의성군민들이 모여 컬링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합동응원전을 벌였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예산낭비_걱정 #이젠_보물단지

물론 처음부터 의성 주민들이 컬링을 사랑했던건 아니라고 해. 2006년 국내 최초로 국제규격의 컬링센터가 의성에 건립됐을 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주민들도 많았었대.

의성군민 손원철(64) 씨는 “5만명이 조금 넘는 군에 국제 규격의 컬링경기장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다들 예산을 쓸데없는 데 쏟는다고 욕 많이 했어”라고 말했지. 또 다른 의성군민 이경섭(56) 씨도 “딸이 의성여고를 다니면서 컬링도 하고 했지만, 사실 유지비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 많이 했지”라고도 했어.

의성 컬링소녀들이 진천선수촌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하지만, 이제 의성사람들에게 컬링은 마늘보다 더 유명한 보물이 됐어. 컬링센터도 ‘애물단지’가 아니라 어디가서도 자랑할 수 있는 ‘보물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경기가 끝날 때 쯤 기자 옆으로 슬쩍 다가 온 한 할아버지. “컬링 보셨어요?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가 전부 의성 사람들이에요. 경상도에서 컬링 좀 한다는 친구들은 다 의성 사람이에요. 더 말해 뭐합니까. 정말 자랑스럽지요."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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