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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욜로? 워라밸? 변화 꿈꾼다면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아라”
-[인터뷰] 여행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카메라 대신 펜으로 쓰고 그린 여행기 ‘호주40일’ 출간


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또 그 일을 남이 좋아해줘서, 생계까지 보장된다면…? 그보다 더 이상적인 ‘욜로’(You only live onceㆍ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삶의 태도)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ㆍ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이 있을까.

‘비정규 미술가’를 자청하며 여행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밥장(본명 장석원)은 오늘날 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욜로와 워라밸의 ‘표본’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SK텔레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가 30대 중반에 돌연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밥장 작가가 자신의 책 '호주 40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대기업을 나와 웹사이트 기획하는 일을 하다가 2007년 쯤부터 아예 전업 작가가 된 그는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비정규 아티스트 밥장이 알려주는 프리랜서의 명쾌한 자기 관리법’(2010ㆍ한빛미디어), ‘밤의 인문학’(2013ㆍ앨리스) 등의 책을 통해 이름을 알리며 각종 강연과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한 10년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덕질하며 잘 놀다보니” 어느새 “먹고 살만 한” 유명인이 된 거다.

밥장 작가가 지난해 말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이라는 여행 책을 출간했다. 만화가 허영만 등과 함께 한 호주 여행기로, 사진 한 장 없이 오롯이 손으로만 쓰고 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멕시코 여행에서 잃어버린 후지필름 엑스프로 카메라 대신, 몰스킨 다이어리와 스태들러 라이너 0.2㎜짜리 펜을 들고 호주의 자연 풍경과 여행의 감상을 기록했다.

밥장 작가를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동 헤럴드 사옥에서 만났다.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에게 변화를 ‘뽐뿌(충동질)’하는 것만큼은 자신있다는 그와의 3시간 넘는 인터뷰는 ‘어떻게 놀 것인가’에 대해 논리적으로 '뽐뿌'를 당하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밥장 작가와의 일문일답.

밥장 작가의 '손으로 쓰고 그린 호주 40일'.

-사진 대신 그림으로 여행기를 기록하게 된 계기는 뭔가.

▶지난해 이맘 때 한달 동안 멕시코 여행을 갔었다. 멕시코는 낯선 나라인데다 한글로 된 여행 가이드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긴장을 잔뜩 했는데, 한 사나흘 지나보니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래서 방심하고 있던 차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 스마트폰을 소매치기 당한거다. 이어 2주 뒤쯤 카메라도 도난당했다. 멕시코시티 교외에 친구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저녁 무렵 공원 주차장에 잠시 주차하면서 카시트 아래 카메라를 넣어놨는데 20분 뒤에 와 보니 유리창이 깨지고 차가 털린거다.

-많이 당황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굉장히 화가 났다. 여행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그때부터 카메라 대신 노트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훨씬 여유롭고 편해졌다. 그래서 남은 2주는 정말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물건을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런 책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진도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내가 겪는 특별한 경험을 다른 방식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오히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보조 자료로 사진을 남긴다. 스냅으로 찍어놓고 숙소에 돌아와 그림으로 정리하는 거다. 여행지에서 사진 자료를 남겨야 하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졌달까. 나만의 호흡을 찾게 된 거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명문대 졸업후 대기업을 다니다가 돌연 ‘전직’을 결심한 계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없다. 2003년부터 사업자를 내고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다. 혼자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아본 거다. 무난하게 학교 다니고 무난하게 직장 생활을 한 편인데, 내 안의 성향 때문인지, 인생이 계속 무난하게만은 안 가더라. 개인적으로는 그 즈음 이혼을 하며 삶의 변화를 겪기도 했다. 아마도 그 당시 내 안의 무언가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이 편해졌고, 또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고 그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불편해했는지 알게 됐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며 살 걸…. 그걸 그림이 내게 가르쳐 준 거다.

-그림을 따로 배웠나.

▶학원을 다닌 건 아니다. 다만 그림을 그리다보면 막히는 게 생기는데, 그럴 때면 미술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어느 화방을 가야하는지, 어떤 재료를 써야 하는지. 내가 답답하니 오히려 빨리 배우게 되더라.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학교나 학원을 통해 배우는 과정을 먼저 생각하곤 하는데, 나는 내가 알고자 하는 걸 학교나 학원이 얼마나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비용과 시간도 문제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변화를 꿈꾼다면 바로 시작하는 게 맞다. 막히는 부분은 찾아보면 된다. 지금은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도 미술학원을 다니면 조금 더 빨리 배울 수 있지 않겠나.

▶학원을 다니는 이유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학원에서 배워도 시행착오는 있다. 예를 들어 포토샵을 배우고 싶다고 치자. 포토샵에는 100가지 기능이 있는데 내가 주로 쓰는 기능은 10가지도 안 된다. 그 10가지를 위해 100가지를 다 배울 필요는 없지 않나. 무엇보다도 시행착오를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 뭔가를 배울 땐 헤매는 게 맞다. 그 과정을 즐겨야지, 효율의 문제를 생각하거나, 지름길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흥미를 잃게 된다. 


-웹사이트 기획ㆍ마케팅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려면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재능이 아예 없진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그 재능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가 문제다. 재능을 발견하려면 누군가 주위에서 그 재능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나 같은 경우에는 ‘그림 실력도 아마추어고 미대도 안 나왔는데 그 정도 그려서 되겠나’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능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어떤 재능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면 좀 더 편하겠지만 그럴 수 없지 않나. 결국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우리 사회가 시행착오를 인정하는 분위기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아직 그러한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각자의 재능을 덜 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자꾸 학교나 학원, 혹은 타인의 성공 사례에 의존하게 되고, 이를 통해 확신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다.

-재능은 늦게 발견될 수도 있는 건데.

▶‘호빵맨’을 그린 야나세 다카시(1919-2013)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그는 그림책 작가이자 시인이었는데 69세에 호빵맨이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ㆍ방영되면서 대박을 쳤다. 그리고선 9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만약 내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일찍 알고, 69세 쯤에는 성공할 것이란 보장이 있다 해도, 과연 그것만 믿고 그 나이까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결국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다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사회도 꽤 다양화됐다고 본다. 예전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스펙 쌓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게 ‘공식’처럼 여겨졌는데, 나는 이미 이 공식이 낡은 것이 됐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서 10년 간 한 10억원 정도 벌었다고 치자. 그 10억을 위해 든 비용을 따져보면 셈이 잘 안 맞지 않나? 고작 10년 번 돈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 수도 없는 거고.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과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타협이 가능한가.

▶요즘은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다 보니, 거기에 따른 상품이나 서비스 소비 패턴도 많이 다양해진 편이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도 많은데, 신기하게도 그들만의 세상에서 덕질하고 놀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제 ‘보편타당함’으로 생계를 꾸리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히려 덕후들의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논리를 알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들의 커뮤니티는 좋은 집이나 좋은 차와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 일만 해도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돈을 버는 방식도 다르다.

-이번 책을 보면 그림뿐 아니라 글씨에도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은데.

▶글씨라는 게 조형적으로도 재밌고, 그 안에는 매우 직관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또 그림하고 함께 있을 때 화학작용도 있다. 글씨를 잘 쓴다는 건 요즘 세상에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글씨 쓸 기회 자체가 별로 없지 않나. 그런데 글씨를 썼더니 반응도 좋고 그래서 계속 쓰게 됐다. 이 또한 이미지라는 개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통영에서 지내고 있다. 공간디자인 하는 친구와 함께 집을 얻어 지내면서 작업도 하고 시민단체 일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한 달에 한 번 통영의 지인 카페에서 과학자 친구들과 함께 강연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 모임을 다른 곳에서도 열어달라는 요청이 꽤 있다. 곧 통영과 서울에 과학서점도 낼 예정이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다. 재능을 나누고 잘 놀면 행복해진다(웃음).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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