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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조선인으로 살기…17년만에 터진 첫 모국어는…
시인에게 모국어는 존재 그 자체다. 모국어로 사유하고 그 말로 존재의 집을 짓기때문이다. 모국어를 잃어버린 시인에게 타국어로 쓴 시는 존재의 증명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시인이 있다. 재일조선인 김시종 시인이다. 1929년 부산에서 나서 제주에서 자랐지만 가나다라의 ‘가’자도 쓸 줄 몰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새로운 일본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던 그는 “천황의 적자가 되는 게 조선인으로서 가장 올바른 삶의 방법”이라고 배우고 실천하는데 열심이었다. 그런 열정적인 소년에게 무직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조선말을 쓰며 낚시나 드리우는 아버지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열입곱살, 조국은 해방을 맞았지만 소년은 슬퍼 홀로 항구 제방에서 ‘우미유카바’ ‘고지마 다카노리’란 노래를 부르며 며칠이나 눈물을 흘린다. 그때 무심코 그의 입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조선어로 된 노래 ‘클레멘타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1948년 제주 4.3항쟁에 참여했다가 1949년 일본으로 밀항해 재일일본인이 된 그는 일본에서도 사회주의 활동을 이어가지만 김일성 우상화에 반발, 조총련으로부터 표현의 봉쇄를 당한다. 스스로 굴레를 박차로 나온 뒤, 그는 남한,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재일조선인으로 남는다. 그 뒤 공립학교 교사가 돼 15년간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에게 ‘클레멘타인의 노래’는 원초적인 것으로 회귀하는 주술이자 그리움과 뉘우침, 기도의 노래이다.

‘재일의 틈새에서’(돌베개)는 그의 실존적 고민을 담은 평론 에세이집이다. 조선어 교사 재직시절 쓴 산문을 한데 엮은 것으로, 언어와 사유가 고요히 조응하는 격있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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