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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식언과 시장개입 이래도 되나
‘식언(食言)한다’는 꾸지람처럼 기분 나쁜 말도 없다. ‘당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식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훈계할 때, “아빠, 엄마도 약속 어겼잖아”라는 항변이 나오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다. 식언하는 사람 얘기가 통할 리 없다. 시쳇말로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이 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말, 지키지 못할 말은 안 하는 게 옳다. 하면 화(禍)만 부른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그것도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뱉은 말을 주워담는 일이 없도록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오해와 곡해가 없도록 토씨 하나 하나에도 신경 써야 한다. 대 국민 발언이나 정책은 완벽한 준비와 기획 아래 발표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요즘 심상치 않다. 주요 부처 장관들이 거듭 말을 주워담고 있다. 식언하기를 밥 먹듯 한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발언이 그 중 하나다. 박 장관은 지난 11일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부처 간 이견이 없어 특별법 제정 방안이 잡혔고 시행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맞장구를 쳤다. 최 장관은 이날 국회 전체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의 말씀은 부처 간 조율된 말씀이고, 서로 협의하면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입장은 달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와 관련한 박 장관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이지만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을 뒤집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둘러싼 부처간 혼선을 지적하며 “부처간 협의와 입장조율에 들어가기 전 각 부처의 입장이 먼저 공개돼 엇박자나 혼선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소관부처 장관들이 “조율된 얘기”라는 주장이 나온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조율에 들어가기 전 부처 입장”이란 지적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다. 때문에 거래소 폐지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려다가, 패닉에 빠진 수만 명의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항의소동에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는 해석에 더 수긍이 간다.

유치원 및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철회키로 한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새 정책은 시행 후 나타날 부작용을 고려해야 하며, 사전에 전문가 및 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이걸 지켰다면 이런 졸속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영세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살길이 막막하다’며 아우성이다. 정부는 종업원 30인 미만 영세기업에 종업원 1인당 13만원 예산을 지원키로 한 데 이어 추가 예산 지원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나라 곳간이 화수분도 아닌데, 언제까지 정부예산으로 충당할지 걱정이다. 한 켠에선 영세사업자에 대한 카드사 수수료 인하를 추진하겠다는 공언까지 나왔다. 영세사업자를 돕는다는 취지로 시장가격에 또 다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개입행위가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알고나 말하는지 의문이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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