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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감자의 실종이 아닌…인간의 실종
소설가 백수린 씨의 단편소설로 ‘감자의 실종’이 있다. 언니의 약혼자가 집에 놀러온 날 옛날 사진첩을 펼치게 되는데, 언니와 ‘나’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들 속에서 ‘감자’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댁에서 찍은 사진들 중에는 분명 감자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반복하자, 볶아먹고 쪄 먹는 감자가 왜 사진 속에 있어야 하는지 다들 의아해한다. 형부 될 사람 앞에서 창피한 행동을 했다고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는다.

다음 날 회사에서, 동료들이 일제히 감자탕을 먹으러 나간다. ‘나’는 어릴 때 감자를 키운 탓에 먹지 않는다고 거절하자, 동료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놀린다. 저녁 동창 모임에서도 감자를 갈아 팩을 한다는 말에 구역질을 참으며 “야만적인 것들”이라고 소리친다. 무엇인가 잘못된 느낌 때문에 인터넷 검색창에 ‘감자’를 입력하니, 흙이 잔뜩 묻은 ‘신념’의 덩어리들이 튀어나온다. 신념이라고 알고 있는 줄기식물을 사람들은 감자라고 부르고, 감자는 ‘개’라고 부르고 있었다. 소설 속에는 ‘나’뿐만 아니라, ‘우체통’을 ‘푸른 물웅덩이’로 이해하는 사람, 그리고 ‘증오하다’를 설레는 사람에게 하는 말로 이해하는 사람도 나온다.

소설 ‘감자의 실종’을 떠올린 것은 아이들의 빈번한 범죄 실종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실종아동법에 따르면, “약취 · 유인 · 유기 · 사고 또는 가출하거나 길을 잃는 등의 사유로 인하여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을 실종아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할 것이 ‘보호자’라는 단어다. 요즘 아동실종 특징 중 하나는 생면부지의 타인이 아이를 보호자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인 부모나 친지가 ‘아이’를 자신에게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이탈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단편소설 속의 수사 드라마에서는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이 범인과 꼭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소설도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 속에서 아동실종의 ‘범인’이 ‘보호자’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가슴 아프게도, 실종은 단순한 실종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던 아이들은 폭행 혹은 성폭행을 당한 뒤 시신까지 유기되었다. 눈앞에 두고도 방치한, 또 다른 실종상태에서 만취한 어머니의 담뱃불에 당하고 만 아이도 있다. 부모들이 ‘아이’를 ‘감자’로 여기지 않고서야, 뉴스를 볼 때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아이’를 ‘국가보조금’이나 ‘쾌락’이나 ‘땔감’으로 여겼단 말인가. 아니면 정말이지 ‘사랑하다’를 ‘때리다’나 ‘죽이다’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새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아이’를 되찾는 일이다. ‘아이’는 아무 단어로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따뜻하고 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해서 안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대로 처리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아, 정말이지, 법적으로도 보호하고, 사회적으로도 보호하고. 정서적으로 보호해야할 대책들이 시급해 보인다. 아이를 지키지 못하는 어른들이라면, 그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리 있겠는가. ‘아이’의 실종은 백수린 씨의 표현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부모’의 실종이며 ‘인간’의 실종이다. 아니 그 모든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한 실종의 전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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