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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기사‘ 배경 블레드는 ’알프스의 눈동자‘...슬로베니아의 흑기사

  • 기사입력 2017-12-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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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Bled) 호수는 슬로베니아의 에메랄드이다.

알프스의 만년설 한 자락은 어느해,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잠시 녹았다가 긴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고려청자 같은 블레드의 이 청량한 비취색 물은 다섯 나라에 걸쳐 있는 알프스를 얼마나 돌고돌았기에 이다지도 맑을까.

율리안 알프스는 남쪽 아드리아해로 달음질 치다 블레드에서 끝을 맞았다. 성녀 율리아는 알프스가 끝 맺는 이곳에 가장 맑은 옥수(玉水)를 모아둔다.

[사진=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전경]

알프스가 믿음직스럽게 블레드를 굽어보는 가운데, 호수 한복판엔 성모(聖母)가 승천했다는 섬이 있고,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는 가장 낮은 문턱의 고성(古城)이 있다. 아는 귀족만 알던 블레드는 이제 슬로베니아를 중ㆍ동 유럽의 최고 힐링 국가로 만든 ‘흑기사’가 됐다.

‘도깨비’와 ‘푸른바다의 전설’을 합쳐 놓은 듯한 수목 드라마 ‘흑기사’의 김래원과 신세경은 신통술을 부린다. 철갑옷을 입고 블레드성을 지키던 기사는 김래원의 눈빛 하나에 스러졌다 되살아나곤 하는데, 어쨋거나 슬로베니아와 블레드는 한국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게 생겼다.

블레드에 대한 현존하는 기록은 101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가 독일 국왕 시절 브릭센의 주교 아델베론에게 이 땅을 하사한 내용으로 남아있다. 알프스 끝자락의 만년설, 호수면 130m 높이 절벽 위에 솟아있는 블레드성(城), 그리고 호수 한복판 그림같은 섬, 그 섬 위에 착상한 성모승천 성당이 한폭의 수채화를 만들어내며, 한국인 여행자들의 최고 찬사 “이거 실화냐?”를 유발한다. ‘마법의 성’ 무대는 이런 곳이 아닐까. 

[사진=블레드 성]

천국 절경에 욕심 버린 마법의 성, 성주= 블레드성은 높지만, 마음이 착하다. 그곳에 가면 인쇄소, 갤러리, 꿀벌 집, 커피숍, 주전소, 와인저장고가 있다. 청동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블레드 지역 역사에 관해 전시해 놓은 박물관과 16세기 예배당, 테라스, 예쁜 식당과 대장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성주를 위한 공간은 넓어 보이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백성의 성이다. 건물은 고딕 양식, 외침을 막아낼 방어벽은 로마 양식으로 지어졌다. 마당엔 전통놀이와 연극이 열린다.

블레드섬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재임때부터 23척의 플레트나라는 전통 나룻배만이 오갈 수 있다. 환갑이 넘은 사공은 몇 대 째 플레트나를 젓고 있다고 했다.

조각배를 엮어, 느리게 옮기며 아침 손님맞이 수상 산책을 하는 젊은 부부 뱃사공도 할아버지-아버지와 같은 인생 여정을 밟고 있으리라. 낯선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부부 뱃사공의 빙그레 미소가 웬만한 관광지 못지 않게 아름답다.

[사진=블레드 섬]

블레드섬 성모승천교회 꼭대기에 올라가 꼭 ‘소원의 종’을 쳐봐야 한다. 오죽하면 예수의 어머니 성모님이 승천한 곳이라 이름 붙였을까. 온 고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데도 주민에게 결혼식 장소로 내어준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신랑이 신부를 안고 이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는데,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의무는 아니다. 그럼에도 약골 신랑 조차 악착같이 객기를 부린다.

유럽 사람들은 이곳을 ‘알프스의 푸른 눈동자’라고 칭송한다. 블레드는 이미 1000년전부터 오스트리아, 헝가리 왕족, 베니스 귀족들이 휴양을 위해 찾았다. 티토 유고 연방 대통령이 구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쿠바 카스트로를 자랑스럽게 초대했던 곳이다. 티도의 별장은 지금 ‘호텔 빌라 블레드’가 됐다.

[사진=흑기사 주연 신세경의 블레드 티타임]

사랑의 도시 류블랴나= 블레드에서 기차를 타면 40분, 버스로 천천히 가면 1시간 가량 남동쪽으로 가면 슬로베니아의 문화과 역사를 품은 수도이자, ‘사랑의 도시’ 류블랴나에 닿는다. 지난해 7월 끝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조인성이 고현정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달려오다가 자동차에 치인 비극적인 프레셰렌 광장이 도시의 중심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사실 이곳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차가 다닐 수 없다. ‘광장 끝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앞에서 저녁 6시 사랑을 고백하면 이뤄진다’는 속설은 사랑 한번쯤 해본 사람에겐 정설이 된다. 흐린날 평일 오후6시에도 연인들은 북적였다.

[사진=사랑의 도시 류블랴나의 여인]

이탈리아 베니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가까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포용력, 착한 우정과 사랑, 문화예술의 나라였기에 군국주의에 여러 차례 침략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착한 심성 덕분에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

19세기 말 아르누보 양식의 수려한 건물들이 연인들의 보트를 싣고 넘실대는 류블랴니차강 좌우로 도열해 있다. 해가 저물면 류블랴니차강을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에선 텃새와 지구촌 놀새가 어울려 와인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저마다의 표현으로 건배한다. 어디선가 “위하여!”도 들린다. 언어는 달라도 류블랴나에 모인 여행자 모두, 사랑을 위한 건배를 한다. 이제 곧 이 일대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사진=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근교 습지]

류블랴나를 드라마 제목 처럼 표현하면 ’사랑과 먹방‘이다. 동서유럽 유명 문화예술도시들의 한 가운데 있었던 만큼, 식재료와 음식이 다양하다. 꿀과 와인, 파르메산 치즈 등 유제품, 전통 소시지 ‘크라니스카 크로바사’, 양배추를 소금에 절인 뒤 발효시켜 만든 슬로베니아 김치 ’자워크라우트‘ 등이 유명하다. 근교의 바르예 습지와 인근 소도시 돔잘레의 정방형 볼치(volcji)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진=아드리아 해변 피란의 일출]

고요 속 열정, 아드리아 연안 피란= 이번에는 차를 남서쪽으로 몰아 1시간30분가량 가면 아드리아 해변 피란을 만난다. 이탈리아 베니스를 마주하고 있는 아드리아해 북동쪽 해안 언덕 도시이다. ‘반도 끝 등대’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pyr”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우세하다. 크로아티아 두보르브니크를 닮은 이 마을은 아름답고 골목의 정취가 있는데, 격정적인 멜로디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을 만든 천재 음악가 주세페 타르티니의 고향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주세페의 흔적이 즐비한 예술의 도시이다.

꿈속에서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악마가 연주하는 음악을 기억해뒀다가 깨자마자 만들었다는 이곡은 치명적인 유혹 처럼 격정적이다. 조용한 해안 마을은 알고보니 열정을 감추고 있었다.

피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타르티니 광장이다. 피란 시청 앞 타르티니의 동상은 한 손에 바이올린 활을 움켜쥐고 무언가 격한 표정으로 광장을 노려보고 있다. ‘악마의 트릴’ 그 격한 서정 그대로이다.

[사진=슬로베니아 아이스크림]

광장 한쪽 캬우호바 울리카 12번지 타르티니 기념관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그가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악보 등을 전시해 놓았다. 참 소박하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후학양성에 집중한 바이올린 교과서이다.

착한 피란은 열정을 감춘 채 드러내지 않다가 아침이 되면 달라진다. 지중해의 일출을 정면으로 받기에 이 곳 해오름은 장쾌하다. 반전매력의 도시이다.

슬로베니아가 한국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때론 수줍음으로 때론 열정으로…. 남을 해치지 않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절제되고 느리게 즐기는 사람들이기에, 한국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될 것 같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취재도움:KRT여행사/슬로베니아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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