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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농부보다 못한 트럼프의 ‘예루살렘 망언’
수년 전 얘기다. 예루살렘에 갔을 때다.

유대인의 성소인 ‘통곡의 벽’에 다달았을때, 이스라엘 전문가인 안내자가 우리 일행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옷깃을 여미시고요. 엄숙한 표정으로 가시죠.”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의 3시간 순례(?)는 이렇게 시작됐다.

예수의 죽음과 유대인의 처절한 울음이 깃든 통곡의 벽, 선조들의 눈물로 만든 무슬림 성소인 황금돔사원에 대한 스토리도 안내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올드시티 내 골목골목, 영화 ‘벤허‘에서처럼 십자가를 등에 진 예수의 행적을 따라다니면서 우리 일행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범접하기엔 너무도 숭고한 장소였고, 묘한 감동이 휘몰아쳤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곳에서 안내자는 또 말했다.

“예루살렘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마 그건 지구가 망하는 날일 것입니다.”

“………………”

예루살렘은 지구에서 가장 성스런 도시면서도, 가장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아주 아주 오래전 유대교의 성전이었고, 예수의 탄생 이후엔 기독교의 성지였고, 600년 뒤 이슬람교가 생긴후엔 이슬람의 성전이 됐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고향이고, 기독교인의 마음의 터전이고, 이슬람교인의 탯줄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둘째치고라도, 역사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숱한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 것도 그래서다. 예루살렘은 그만큼 이해 당사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뿌리다. 이런 예루살렘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못박았으니, 그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벌집울 쑤셔도, 이보다 더 요란하게 쑤실 수는 없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속에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곳으로 규정돼 왔다. 우리 역시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검색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지역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지만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도시’라고 돼 있다.

이유는 하나다.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의 통곡과 원한, 절절한 사무침으로 점철돼 있는 예루살렘을 어느 곳의 소유로 규정하는 것은 반(反)평화와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중동 화약고의 근원적 배경으로, 그 복잡미묘한 상징성을 해치는 것은 인류에게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사안은 다르지만, 너무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황희 정승과 농부’ 이야기다.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가 소 두마리를 몰아 밭을 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랬더니 농부는 황희 정승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답을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리 소라도 싫어하는 이야기를 듣게 하면 안되죠.” 이보다 평화와 배려의 위대함을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발언은 정치적 위기 탈출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평화를 사랑하는 것에 관한한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은 옛날 그 농부만도 못하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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