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포항 강진 후폭풍] “하늘이 준 기회”…정시 ‘올인’ 재수생 ‘열공모드’
학원가 북적…“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생부전형 불리한 재수생들 정시 더 절박


‘D-6. 채우기에도 무너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입니다.’ 서울 강남 하이퍼 재수학원 강의실 앞에 붙여진 문구다. 강의실을 가득 매운 40여명의 학생들이 문제집을 푸느라 여념이 없다. 숨 쉬는 소리조차 안 들릴 만큼 고요했다. 간혹 문제집 넘기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유를 묻자 학원 관리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추우면 졸음을 쫓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온도를 낮춘 것이죠”

수능예정일이었던 지난 16일 만난 재수생들의 모습은 매우 침착한 모습이었다. 입시 실패를 이미 경험해 본 이들에게 일주일의 시간은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공부 열기는 복도에서도 느껴졌다. 졸음을 쫓기 위해 서서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수리영역 문제집을 풀고 있던 한 삼수생 학생은 “어제 수능 연기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충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차피 수능 연기라는 변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기존에 봤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사실 학생부종합전형의 기회가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과는 달리 재수ㆍN수생들은 수능이 더욱 중요하다.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이 낮아 정시에 ‘올인’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수시모집을 지원해도 최저등급이 있는 논술전형을쓰는 게 대부분이다. 황예진(20ㆍ여) 씨도 내신 때문에 학생부종합전형 수시는 쓰지 않은 경우다. 그는 “정시모집만 바라보고 1년을 준비했다”며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정말 안 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물론 전국을 뒤흔든 지진 사태와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에 재수생들에게 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워서 울거나 잠 못 이루는 학생들도 많았다. 학원 역시 ‘비상’이었다. 밤늦게 대책회의를 하고 학원 생 600여 명에게 안내 문자를 보내는 등 분주했다. 최모(21) 씨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순간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고 털어놨다. 복도에서 사회탐구 문제집을 정리하고 있던 이정민(20ㆍ여) 씨는 전날 일을 생각하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잘 준비를 하려고 씻고 누워있는 도중 사람들에게 전화가 왔다”며 ”책도 다 버린 상태라 집 앞 재활용 터에서 책을 주워오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수능 전날 문제집을 버리는 이른바 ‘책거리’는재수생들이 ‘삼수’는 없다는 의미로 배수진을 치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학생들은 의외로 전날 충격을 뒤로 하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고 한다. 정영호 강사는 “재수생들은 1년 이상을 수능만을 위해 공부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충격도 컸지만 동시에 더 회복도 빨랐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번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심리전에서 말려선 안 된다는 학습효과도 있을 것이고, 더 이상의 재수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불안감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오후 5시께 담임 강사의 종례 시간이 되어서야 학생들이 책에 파묻혀있던 고개를 들었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담임 강사는 학생들에게 “너무 욕심 내어 안 하던 공부를 하지 말고 그 동안 했던 것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라”며 강조했다. 무조건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는 강사의 조언에 학생들의 눈은 순식간에 반짝였다. 지진도 막지 못한 간절함이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