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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대국 미국은 ‘정부-기업의 합작드라마’
스티븐 S. 코언 등 두 저자
200년 역사 결정적 순간 조명

정부는 고관세로 기업 보호
기업은 혁신하며 새영역 개척

작은정부는 신화이자 허구
단 한번도 자율적 시장에
美 미래 맡긴 적 없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나라의 경제 정책은 권력자들의 아우성이나 얼치기 저술자의 학설을 따르는 대신, 현실을 바탕으로 생산성 증가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집중했다.”

경제학자이자 미국 정부의 경제 정책에 직접 관여해온 스티븐 S.코언과 J. 브래드퍼드 들롱이 미국이 어떻게 경제대국이 됐는지, 지난 200여년 역사를 통해 찾아낸 교훈이다. 한 마디로 경제성장의 열쇠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한 정부의 실용적 선택, 경제 재편에 있었다는 것이다. 
“선별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정부 지출은 향후 미국이 지속적으로 기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준 첨단 기술들을 창출해 냈다. 정부의 간섭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짓누르기는커녕 광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어 기업가들이 그 분야에 주목해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현실의 경제학’에서)

이들은 공저 ‘현실의 경제학’(부키)에서 이 역사적 교훈을 전하기 위해, 미국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는지, 지난 200년동안 미국 정책의 결정적 순간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 빛나는 지점에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정부가 방향을 제시한 뒤 장애물을 제거하고, 길을 닦아주고 수단까지 제공해주면, 기업가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몰려들어 혁신하고 수익을 내면서 새로운 영역을 확장시켜왔다는 것이다.

흔히 미국은 작은 정부와 자유방임시장이 혁신의 동력으로 얘기되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건국에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율적 시장에 나라의 미래를 맡긴 적이 없다. 중앙집권적인 연방 정부를 중심으로 각 단계마다 경제 재편이라는 지적설계를 통해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미국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더 해밀턴은 무역과 금융을 통제, 걸음마 단계의 제조업을 경쟁력있는 영국 기업들로부터 보호하는데 중점을 뒀다. 관세는 높게 유지하고 철도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등 자본과 인적 자원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제퍼슨을 따르는 정치 세력이 집권했을 때조차 해밀턴이 깔아놓은 그 길을 따라갈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미국은 시장상황을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고 신생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과 남부 대농장주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고관세 산업화 정책을 거듭 갱신해 나갔고 이는 자국산업을 키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 때 신생 업체에 불과했던 회사들이 19세기 말경에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선진 공업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북대서양에서 가장 높은 보호주의적 관세를 유지했다.

정부 개입의 또 다른 사례는 미국 철도건설이다. 서부개척에 따라 교통수단의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정부가 건설하기에는 예산도 인력도 부족했다. 정부는 철도가 놓일 구간을 조정해 업체들에게 철도 주변의 토지를 불하하고 기술적인 지원을 해줌으로써 업체들을 끌어들였다. 그 과정에서 독점과 부정부패 등 부작용이 노출됐지만 경제도약을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으로 인식, 기꺼이 추진했다, 여기에는 초당적인 노력이 있었다. 덕분에 미국 전역에 새로운 농장과 광산, 공장, 도시들이 건설됐고 철강, 석탄, 기계산업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정부는 인프라 뿐 아니라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식도 사용했다. 대량생산방식의 기초를 놓은 것도 정부였다.

안정적이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에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아메리칸 시스템’이라 불리는 미국식 생산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생산체계를 만든 것은 역동적인 시장의 개개인들이 아니었다. 그 밑에는 실패의 리스크를 감내하는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애플과 아마존, 구글 등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기업들의 뒤에도 미국 정부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이젠하워 시대 미국 정부는 구 소련에 군사기술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첨단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국방과 관련없는 낭비라는 비판에도 개의치 않고 투자한 결과 탄생한 것이 패킷교환이었고, 이것이 훗날 인터넷의 기초가 된다.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은 기술에 투자한 것은 월가의 엔젤 투자자가 아니라 정부였다는 얘기다.

저자들은 미국이 이런 경제 정책들을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꼽는다. 바꿔말하면 미국적 실용주의다. 이념이나 경제이론과 관계없이 지금 필요하고 가능한 일에 집중하는 것, 그 실용의 리더십이 미국의 위기 극복과 경제성장의 근본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 주도의 경제 재편이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1970년대 금융을 중심으로 한 경제 재편작업은 실패의 전형적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에 따르면, 1970년대 금융 중심의 경제 재편은 명확한 비전에 바탕을 두고 이뤄진 게 아니었다. 미국이 금융화의 길을 갔던 과정은 성공적인 경제발전 과정과 뚜렷이 구분된다, 규제를 풀면 모두가 그 혜택을 볼 것이라는 모호한 구호만 있었을 뿐 경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없었다. 하나의 경제이론을 굳게 믿고 그것을 밀고 나가는 이데올로기적 자세였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미국 경제 재편과 반대의 길이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저자들이 책을 통해 현재에 시사점을 제시한다. 정부의 경제 재편이다. 미국이 걸었던 과거 역사의 길을 돌이켜보면 현재의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한 경제성장의 비결이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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