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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소설가 셋이 바라보는 색다른 현실
윤고은 ‘해적판을 타고’
환상·현실의 경계 허물며 사회문제 환기

정한아 ‘친밀한 이방인’
여러개의 가면이 필요했던 한 인물 추적

배지영 ‘안녕, 뜨겁게’
이별이 어려운 사람들의 뭉클한 이야기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부쩍 늘었다.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소설들은 우리 문학의 새로운 리얼리즘이라해도 좋을 유연함을 지니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실의 부조리, 사회문제를 상상과 위트로 엮어내 다르게 보기를 시도해온 윤고은의 세번째 장편소설 ‘해적판을 타고’(문학과지성사)는 얼핏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키 어렵다. ‘해적판’이 바로 ‘어린왕자’의 해적판이라는 건 좀 지나야 등장한다. 

“그 사람의 본명은 이유미, 서른여섯 살의 여자예요. 내게 알려준 이름은 이유상이었고, 그전에는 이안나였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여자라는 사실까지 속였으니 이름이나 나이 따위야 우습게 지어낼 수 있었겠죠. 그는 평생 수십개의 가면을 쓰고 살았어요.”(‘친밀한 이방인’에서)

소설은 한 가족의 즐거움이자 자랑, 희망인 마당이 어느날 파헤쳐지면서 시작한다. 채송화와 라벤더는 뭉개지고 깊은 구덩이에는 수상쩍은 짐들이 묻힌다. 그 이후로 마당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채송화와 배롱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 슈퍼지렁이가 나오는가하면 거미집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채운다.

열 두살의 나는 땅 속에 묻힌 것들이 실험용 토끼, 정확하게는 비소에 오염돼 실험용으로도 쓰지 못해 폐기된 토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센터에선 폐기물처리장이 마련되면 옮길 거라며, 잠시만 마당을 빌린 거라지만 처리장 건설은 진척되지 않고 교체된 소장은 책임까지 가족들에게 떠넘긴다. 이웃들의 노골적인 시선, 마당의 변화로부터 가족들은 불안과 두려움, 고립에 처하게 된다. 상황은 엉뚱한 데서 반전을 이룬다. 떠나 온 마당있는 집이 포켓몬, 지롱이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타게 되고 마침내 집에 대한 의문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어린왕자’ 해적판은 아버지의 동료인 루가 회사 사택으로 이사하던 날, 선물해준 책이다. 원본이 나오기전 어설프게 인쇄돼 나온 책은 끝 두 장이 사라진 상태다. 작가는 해적판의 사라진 두 장을 통해 새로 쓰일 이야기, 희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듯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면서 사회문제를 환기시켜온 윤고은식 현실다루기가 이 소설에서도 빛난다.

‘달의 바다’(2007년), ‘리틀 시카고’(2012) 이후 5년 만에 펴낸 정한아의 세번째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문학동네)은 좋은 소설이 지니게 되는 긴장감과 밀도를 보여준다. 한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훔친 여러 개의 가면을 지닌 인물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는 긴장감을 부여한다.


몇 년 동안이나 소설을 쓰지 못한 소설가 ‘나’는 어느 날 신문에서 흥미로운 광고를 발견한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란 문구와 함께 실린 소설의 일부는 자신이 출판사 공모전에 냈던 소설로, 떨어진 뒤론 까맣게 잊고 있던 소설 ‘난파선’이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의 ‘진’이라는 여자로부터 6개월전 실종된 남편이 그 소설의 작가 행세를 했다는 얘길 듣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믿기지 않는 얘기에 나는 사로잡히고 만다.

“이유상. 이유미. 혹은 또 다른 어떤 이름의 그 여자. 음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그 여자는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했고, 그 와중에 학생들 다수를 콩쿠르에 입상시켰다. 그녀는 또한 자격증 없는 의사였고, 또 각기 다른 세 남자의 부인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숨가빴던 그 여자의 인생에 ‘난파선’이 어떻게 끼어들었는가 하는 점이었다.”(‘친밀한 이방인’에서)

이유미와 알고 지낸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가면의 퍼즐을 풀기 시작한 나는 종국에 전혀 예상치 못한 실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배지영의 5년만의 장편소설 ‘안녕, 뜨겁게’(은행나무)는 이별에 대한 남다른 탐색을 그린다. 급작스러운 단절과 아물지 않는 상처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이별을 제대로 한다는 게 가능한 걸까. 소설에는 사랑의 실패자와 가족의 이별 등 여러 형태의 이별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관계회복을 위해 등반 겨울 산행을 하다 산 중턱에서 자신을 홀로 버리고 하산해 버린 연인에 상처입은 주인공 제이, 이별을 원하는 연인을 억지로 붙잡다 자신을 피하기 위해 차도로 뛰어든 것을 본 미스터 리 등 제대로 된 이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이어진다.

‘오란씨’ ‘링컨타운카 베이비’를 통해 70년대 급속 성장 이면의 추악한 모습과 소외된 이들의 삶을 특유의 유머로 그려온 작가의 감각적인 문체를 이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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