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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광캔버스에 유려한 초서체…‘문자산수’ 유승호의 실험
경리단길 신생공간 갤러리 P21서 개인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주황 초록 형광바탕의 캔버스 위로 유려한 초서체가 화려하다. 굵은 선 주변에 스미고 번진 흔적이 역력하다. 가까이서 보니 얇디 얇은 붓질의 흔적들이다. ‘문자산수’로 유명한 유승호(43)작가의 신작들이다. 펜으로 쓴 작디 작은 글자로 그려낸 무채색 산수로 유명세를 탔던 작가는 그만큼 색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채색을 벗고 색을 입고자 하는 시도를 했던게 지난 2006년경이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실험은 이제 완연히 무르익어 글자와 색을 가지고 ‘논다’.

유승호작가의 개인전이 2년만에 열린다. 서울 경리단길에 위치한 갤러리 P21은 개관 두번째 전시로 유승호 개인전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개최한다. P21은 청담동의 터줏대감인 박여숙갤러리의 차녀인 최수연대표가 운영하는 신생공간이다. 

유승호, 슈 shooo-, 2015, ink on paper, 19.1×24.2cm[사진제공=박여숙화랑]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형광색은 촉감적이면서도 초감각적이죠. 다른차원의 색 같지 않나요?”라며 “초서체를 활용해 언어라는 고정된 매체를 비틀기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글씨 같아 보이지 않는’ 서체인 초서체를 택한건 어찌보면 필연이다. “한자는 상형문자인데, 지금까지 제가 해온 글씨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과 연계성이 읽혔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본질에서 멀어진 글자를 이미지화 함으로써 본질로 돌려보내려는 혹은 본질과 글자의 간극을 보여주는 유승호 작가의 작업은 봤을 때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초서체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선택한 글씨가 중국 왕희지와 추사 김정희의 서체다. 그러나 어떤것이 왕희지 서체고 어떤 것이 김정희 서체인지 찾아보는 건 무의미하다. 작가는 서체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그들 글씨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작품 어딘가에 선조들의 획은 살아있지만 그것이 작품을 구성하는 전부가 아니다. 

유승호, 초 fool, 2017, acrylic on canvas, 330×140cm. [사진제공=P21]

일례로 3미터가 넘는 형광 주홍빛 화폭에 그려낸 ‘초’(Fool)은 추사 김정희가 초서체로 쓴 다산초당 현판의 ‘초(屮)’를 모티브한 작품이다. 화폭 아래 ‘초(屮)’라는 글씨가 생생하지만 그보다 전체적 볼륨감이 먼저 다가온다. 작가는 ‘호리병’을 생각하며 그렸다고 했지만 등잔불 같아 보이기도 한다. ‘초’(Fool)는 영문제목과 함께 읽으면 ‘촛불’로도 읽힌다. 특유의 언어유희가 재미나다. 

유승호, 뇌출혈 natural, 2017, acrylic on canvas, 145.5×112cm[사진제공=P21]

그런가하면 신작 ‘뇌출혈’은 석양에 물든 산맥같다. 한 발짝 물러나면 ‘내츄럴’(natural)이라는 영어 단어가 읽힌다. ‘우수수수’도 ‘주르르르’도 글자가 흘러내려 흩어 사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직관적이면서도 눈길을 끄는 유승호 작가의 작품은 전면을 유리로 배치, 경리단길을 갤러리 공간으로 불러들인 P21과도 잘 어울린다. 최수연 대표는 “신생공간이라고 너무 젊은 작가만을 소개하진 않을 것”이라며 “경리단길과 어울릴 수 있도록 중량감 있으면서도 작품성이 있는 작가들 작품으로 꾸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 25일까지. 같은 기간 박여숙화랑에서는 작가의 기존 작업인 ‘문자산수’를 만날 수 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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