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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래어 넘어 외계어 남발하는 아파트들
콩글리시 조합ㆍ작명 ‘뒤범벅’
지역-브랜드-펫네임 덕지덕지
의미파악 안돼 동네 찾기 방해
한글천시, 영어우월 조장 비판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이달 분양에 들어가는 서울 가재울뉴타운의 ‘래미안 DMC 루센티아’는 시공사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이름의 뜻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반포주공1단지 1ㆍ2ㆍ4주구 재건축 수주에 성공한 현대건설이 내건 ‘디에이치 클래스트’(THE H Class+est)는 영어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하다. 그래서 한국에 3년 넘게 거주한 한 영국인에 물어보니, “오타가 아니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571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가치를 기리고 한글사랑을 다짐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정작 우리 주변에서 쉽게, 또 자주 접하는 아파트 이름은 외래어를 넘어 외계어로 뒤범벅되고 있다.


아파트가 처음 선보였을 때는 일본풍의 ‘맨션’(대저택)을 사용하는 곳이 많았다. 이를 막기 위해 1976년 아파트에 외래어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자 ‘압구정 현대’처럼 동네 이름에 건설사 이름을 붙이는 형태가 주를 이뤘다. 또 개나리, 진달래, 진주 같은 한글이름도 유행했다. 외래어 사용제한이 풀리고 2000년을 전후해선 래미안, 자이, 푸르지오 등 각 건설사마다 도입한 ‘오묘한’ 브랜드들이 전면에 나섰다. 영등포의 대우드림타운은 ‘영등포 푸르지오’로 이름을 바꿔다. ‘캐슬’(castle, 성)이나 ‘팰리스’(palace, 궁전) 탓에 유학생이 왕족이나 귀족으로 오해받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파트 이름이 ‘뒤죽박죽’ 된 이유는 뭘까? 첫 이미지를 좌우하는데다, 이름 자체로 상품의 특징과 장점을 쉽게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펫네임(애칭)은 필수고, 최근에는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가세했다.

문제는 이름짓기 경쟁이 도를 넘어서면서 창의적이기보다는 한글 오염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재건축ㆍ재개발이 진행되는 곳은 여지없이 외래어다. 역삼동의 개나리아파트가 재건축 후에도 개나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예외로 꼽힐 정도다.

공원 인근이면 파크를, 한강 근처면 리버를 사용한다. 센트럴은 중심지를 강조하기 위해 선호한다. 올해 7월 서울에 분양한 9개 단지 가운데 5곳이 센트럴을 썼다. 중흥건설은 세종시 아파트에 에듀카운티, 에듀하이, 에듀힐스, 에듀타운 등 여러 단지에 ‘에듀’(edu-)를 붙였다. ‘평택 지제역 동문 굿모닝힐 맘시티’처럼 지역과 입지, 건설사 및 브랜드 이름에 펫네임까지 붙어 단지명이 덕지덕지 길어졌다. ‘맘시티’는 콩글리시다.

루센티아, 클래스트, 아르테온, 블레스티지, 헬리오시티 등 여러 외래어 낱말을 조합한 단지명은 본래 의미를 짐작하기 어렵고 기억은 커녕 발음조차 쉽지 않다. 영어라는 껍데기만 빼면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조잡한 신조어보다 나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정인환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아파트 이름을 영어나 영어 조어로 짓는 건 영어가 한글보다 고급스럽고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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