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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호 “세계 미술계에 선례 남겨야겠다 싶었다”
영국 유명 디자이너와 ‘표절’소송
공식사과ㆍ손해배상 합의 끌어내

사비나미술관서 개인전
8월 31일부터 9월 29일까지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이명호는 사진작가다. 들판의 나무 뒤에 흰 캔버스를 배경으로 설치하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사람이 캔버스에 나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그리는 그림이다.

이 심플한 아이디어엔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 목적이 무엇인지 하는 깊은 질문을 담고 있다. 더불어 캔버스만 덧대에 놓았을 뿐인데,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장소가 새롭게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일찍부터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러브콜이 거셌다.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은 사진작가 이명호의 개인전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를 개최한다. 최근 영국 유명 패션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와 표절소송을 마무리 지은 이명호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야기한다. ‘캔버스를 댄 나무’를 찍은 사진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 받았지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작가로의 고민은 그대로다. / 이명호, Tree… #6, 93×78cm, Ink on Paper, 2014.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그의(마리 카트란주ㆍ영국 유명 패션디자이너) 눈에도 (내 작품이) 좋아보였을거란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짚고 넘어가야 했죠. 아트상품을 제작하기 싫어서 안한 게 아니거든요. 제 작품의 콜렉터들과 미술관을 생각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예술계에 선례를 남겨야겠다 싶었습니다”

1년 반 가까이 표절 소송을 진행, 마리 카트란주로부터 공식 사과와 함께 손해배상 합의를 끌어내 ‘사실상 승소’한 사진작가 이명호가 그간의 사정을 털어놨다. 자신의 개인전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가 열리는 사비나미술관 간담회자리에서다.

그는 지난 2015년 지인으로부터 ‘마리 카트란주와 콜라보를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의 작품이 도용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까지 자신의 작품 컨셉을 배껴 활동을 하는 작가가 심심찮게 있었지만, 유명 디자이너가 무단 도용한 건 처음이었다. ‘나무’시리즈가 들어간 티셔츠와 가방이 온ㆍ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되고 있었다. 이 작가는 같은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장을 제출했다.

마리 카트란주 측은 초반엔 전면 부정했다. 그러나 나무 뒤에 사용한 캔버스의 폭이 7개인 점, 이명호 작가의 나무와 카트란주의 나무 실루엣이 명확하게 일치하는 점, 그리고 일부 나무 가지 몇개가 삭제된 점이 ‘베꼈다’는 증거로 작용했다. 결국 카트란주 측에서 표절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배상금 규모를 조정을 거쳐 최근에야 최종 합의가 끝났다. 이명호 작가는 “선례가 없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다만 구체적인 합의 사항과 금액에 대해서는 ‘비밀 유지 조항’등을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호 작가가 법원에 청구한 최초 금액은 200만 달러(약 24억원)다. 

이명호, Tree...#8, 78×294cm, Ink on Paper, 2015.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이명호, Mirage… #5, 91×271cm, Ink on Paper, 2013.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표절 소송 한 고비를 넘긴 이후 시작한 이번 개인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늘 자신이 고민했던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성찰을 꺼냈다. 전시는 뷰파인더로 보이는 대상(피사체)과 촬영하는 이(관찰자)의 관계를 카메라 구조에 빗대 설명한다. 관객들은 각 층 전시장에 설치된 ‘핀홀’을 통해 이미지가 생성되고 사라지는 찰나의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더불어 부산 대대포를 배경으로 흰 캔버스 프레임이 설치된 넓은 바닷가를 촬영한 신작과 표절 소송의 대상이 됐던 ‘나무…#3’도 나왔다. 탁 트인 바닷가와 넓은 평야에 선 나무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이 상당하다.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 혹시 화면의 조형미를 위해 후작업을 한 건 아닐까. “사진은 뷰 포인트 한 점을 찾는 것이예요. 그 과정이 엄청나게 고통스럽죠” 당장이라도 촬영장소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그의 전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진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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