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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을 거니, 명주가 되다<4>]‘진의 롤스로이스’…텐커레이(Tanqueray)
-1830년 찰스 텐커레이가 만들어
-전통적 제조방법 자랑
-‘서민의 술’에서 ‘품격있는 술’로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굉장히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자신과 가문의 선대,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기때문이다. 여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로지 술 하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기네스, 조니워커, 스미노프 등 한번쯤 들어본 이 술들은 사실 사람의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인생술’로 칭송받는 명주 중에는 창시자의 이름을 건 술들이 상당히 많다. 이 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백년 간 이 술이 후대에 이어질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한 잔의 술을 위해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제공=디아지오코리아]텐커레이 창시자 찰스 텐커레이(Charles Tanqueray)


<4>텐커레이=세상에는 우연히 빚어진 술도 있지만, 분명하고도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난 술도 있다. 바로 진(Gin) 얘기다. 진은 주니퍼 베리에 다양한 허브를 첨가한 무색의 투명한 증류주로, 스트레이트로 음용되며 드라이 마티니, 진토닉과 같은 각종 칵테일의 베이스로 사용돼 칵테일에 풍미를 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수많은 애주가와 세계 최고의 바텐더들이 가장 사랑하는 ‘진’이지만, 사실 진의 출발은 술이 아닌 ‘약’이었다. 오랜 시간 서민의 곁에서 때로는 병을 물리치는 약으로, 때로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는 술이 바로 ‘진’이었다. 이 술이 오늘날 프리미엄한 퀄리티의 맑고 향기로운 증류주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청년 텐커레이(Tanqueray)의 역할이 컸다. 

[제공=디아지오코리아]1957년 뉴질랜드의 텐커레이 광고


진이 첫 데뷔를 한 곳은 다름 아닌 ‘약국’이었다. 1660년경 네덜란드 라이덴(Leiden) 대학의 의학박사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는 진을 이뇨 및 해열제로 개발했다. 이 약은 프랑스어로 ‘즈니에브르(Genievre)’라 불리며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역에 사는 네덜란드인 사이에서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널리 음용됐다. 또 네덜란드 본토에 사는 애주가들은 아예 이 약을 ‘제네바(Geneva) 와인’이라 부르며 마시곤 했다. 네덜란드 전역을 휩쓴 제네바 와인은 ‘진(Gin)’이라는 이름으로 명예혁명 당시 영국에 입성하게 된다.

이 시기 값싸고 맛있는 진은 많은 영국 노동자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가난뱅이도 진을 마시고 취하면 제왕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하여 ‘왕이 부럽지 않은 가난(Royal Poverty)’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영국 전체가 진에 중독돼 사회적 부작용이 만연하자 1752년 의회가 나서서 ‘진 법령’을 만들어 제조와 판매 면허를 대폭 강화해 진의 폐해를 막고자 했다. 진은 이때부터 미국의 금주법 시행(1920년~1933년) 전까지 약 200년에 걸쳐 많은 불법 증류소에서 주로 생산됐다. 이러한 암흑기에서 진을 건져 올린 사람이 바로 20살 청년 찰스 텐커레이(Charles Tanqueray)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진의 청량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은 1830년, 당시 20살 청년 텐커레이의 열정이 이뤄낸 쾌거다.

찰스 텐커레이의 선조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금 세공업 사업을 해왔다. 대대로 성직자를 배출한 이 가문에서 텐커레이 역시 가업을 잇는 것은 당연한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의 생산에 매달리게 된다. 19세기에 연속식 증류기가 개발되면서 효과적이고 순수한 알코올을 생산할 수 있게 되자 그는 주저없이 최고의 진을 생산하는 것에 명운을 걸었다. 

[제공=디아지오코리아]텐커레이 넘버텐으로 만든 칵테일 진토닉


1830년 텐커레이가 개발한 ‘텐커레이 진’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술이라는 이미지로 급부상했다. 텐커레이의 최고 영업 비밀은 다름 아닌 ‘물’에 있었다. 당시 텐커레이는 일반적인 흐름에 따르지 않고 온천 주변에 증류소를 설립했는데, 텐커레이의 이 같은 결정은 브랜드 품질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후 1898년에 텐커레이는 전세계 최고의 진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고든스(Gordon’s)와 합병을 하게 된다. 고든스는 진 중에서는 유일하게 영국 왕실의 인증서를 받고 전세계 140개국에 판매되는 World No.1 진으로 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텐커레이는 ‘텐커레이 진’과 ‘고든’이라는 2개의 톱 브랜드를 가진 제1급 진 메이커로 급부상하게 되며, 이후 글로벌 1위 프리미엄 종합주류회사 디아지오(Diageo)에 인수 합병된다. 이로써 디아지오가 보유한 세계 최정상 위스키, 맥주, 보드카, 와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텐커레이는 금주법 폐지로 인해 활로가 열린 미국시장에 안착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33년 미국에서 금주법을 폐지시킨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접 텐커레이를 이용해 마티니를 만들어 자축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건 이후로 텐커레이는 금주령 폐지 이후 백악관에서 가장 처음 마신 술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됐다.

1964년에는 당시 유행의 아이콘이었던 전설적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샌프란시스코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텐커레이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고, 이 이야기는 널리 퍼졌다. ‘미국 코미디의 황제’라 불리는 밥 호프와 같은 유명인사는 물론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사랑을 받은 텐커레이 진은 1950년대 미국 주류 문화를 이끌며 폭발적 성장을 보였다. 18세기 소화기와 칵테일 쉐이커를 연상시키는 텐커레이의 상징 ‘녹색병’은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술이 됐고, 그 인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진의 역사를 두고 “네덜란드 사람이 만들고 영국인이 꽃을 피웠으며 미국인이 영광을 주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전세계의 진 매니아에게 ‘진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텐커레이 진은 전통적인 방식을 잃지 않고 제조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텐커레이 진은 총 4번의 증류 과정을 거치게 된다. 3번의 증류과정을 거쳐 아주 맑고 순수한 원액을 증류주로 얻은 다음, 창시자 텐커레이가 개발한 ‘No. 4’라 불리는 구리로 만든 단식 증류기에서 다시 한번 더 증류한다.

마지막 증류 시에는 주니퍼 베리, 계수나무 껍질, 계피껍질, 감초 등 여러 식물을 넣어 향을 첨가하는데, 이 식물들 역시 전세계 최고 등급 만을 선별하도록 하고 있다. 다른 진들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알코올 도수 47.3%와 최고 등급의 식물들과 배합된 텐커레이 진은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닌 스페셜한 드라이 진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텐커레이는 찰스 텐커레이가 남긴 뜨거운 열정과 번뜩이는 경영자적 안목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전통을 고수하는 동시에 혁신을 주도하는 브랜드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2000년 새로이 출시된 ‘텐커레이 넘버 텐’(Tanqueray No.Ten)은 진의 역사를 다시 쓰며 수퍼 프리미엄 진 시장에 큰 혁신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텐커레이 넘버 텐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신선한 감귤류의 과일과 독일산 캐모마일을 첨가한 프리미엄 진이다. 1920년대 만들어진 증류기인 Tiny No.Ten 이라고 불리는 작은 증류기로 최상급의 원액을 추출한다. 텐커레이 넘버 텐은 2003년도부터 3년 연속 샌프란시스코 스피리츠 컴피티션 홀 오브 페임(SAN FRANCISCO SPIRITS COMPETITION’S HALL OF FAME)에서 ‘월드 베스트 진’(WORLD’S BEST GIN)으로 선정되면서, 역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고 최고의 진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전세계 바텐더들 사이에서 최고의 진이라는 표현으로 ‘(The Gin)’이라고 불리고 있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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