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누구를 위한 ‘농어가저축’?
두 농가가 있다. A농가는 남편이 3.96ha(1만2000평), 아내가 0.82ha(2500평)의 농지를 소유한 대농이다. B농가는 남편 소유의 땅은 없고, 아내 명의로 0.49ha(1500평)의 농지를 갖고 있는 영세농이다. 두 농가는 농지면적에서 약 10배가량 차이가 난다. 그만큼 농가소득 격차도 클 것이다.

1976년 도입된 ‘농어가목돈마련저축’이란 게 있다. 농가와 어가의 재산형성을 돕기 위해 파격적인 이자(장려금리)를 주는 상품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지면적(저소득 가입자 1haㆍ3025평 이하, 일반 가입자 1ha초과 2haㆍ6050평 이하), 농업 외 종합소득금액(직전 연도 최저 생계비 미만) 등의 제한사항이 있다.

농지면적만 놓고 보더라도 대농인 A농가는 당연히 이 상품에 가입할 수 없고, 영세농인 B농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B농가의 남편은 지난해 말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가입했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그게 이렇다.

2010년 강원도로 귀농한 그는 2016년 12월에 들어서야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가입을 했다( 그 이전엔 경제적인 여력이 없어 쭉 미뤄왔다). 그는 “좋은 제도 덕에 저소득 가입자로 최고 연 12.19%의 이자를 받게 되니 감개무량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입 후 석 달여가 지난 2017년 3월의 어느 날, 그는 지역단위농협으로부터 “부적격 가입자로 분류되어 해약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만기(5년)가 된 농어가목돈마련저축(2011년 가입, 연리 15.1%)을 찾아 짭짤한 목돈을 손에 쥔 A농가의 아내 또한 2016년 12월에 저소득 가입자로 다시 가입했다. B농가 남편과는 달리 그는 부적격 통보를 받지 않았다.

그 사이 정부는 40년 만에 부정 가입 및 고금리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던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대한 수술을 단행했다. 개선책의 핵심은 가입한도를 기존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이는 대신, 기본 금리(2017년 2.05%)에 얹어주는 장려금리는 기존의 절반 수준(저소득 최고 9.6%→4.8%)으로 낮춘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부, 농협 등이 머리를 맞대고 40년 만에 마련했다는 이 개선책은 정작 ‘영세농인 B농가 남편은 부적격 가입자가 되고, 대농인 A농가의 아내는 적격 가입자가 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점을 바로잡지는 않았다.

이 왕대박 저축상품의 이름은 농어가목돈마련저축이다. 상품명 그대로 가구의 재산형성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B농가의 남편은 농업인이자 농가 세대주이고 아내 역시 농업인이니 애초 가입대상자의 자격을 농가로 파악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현행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관한 법률’은 농가가 아니라 농지를 소유 또는 임차한 개별 농업인을 가입자격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영세농인 B농가 남편은 부적격자가 되고, 대농인 A농가의 아내는 버젓이 가입해 최고 금리를 챙길 수 있는 이유다.

고의든 아니든, 현행 법률은 대농도 편법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농업ㆍ농촌 관련법과 제도를 살펴보면, 이런 저런 문제점들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 이젠 정말 바로잡아야 한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