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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 재개발 해제지역에 꽃피는 주거문화
건축과 부동산시장에서 다원적 민주주의 개념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20세기식 물리적 개발의 패러다임을 지나 상생과 소통, 포용의 가치를 회복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도시는 불균형한 개발과 투기의 현장이다. 사회구성원들 간 삶의 양극화도 더 가속되고 있다.

주택재개발정비(예정) 구역에서 해제된 우리 주변의 노후주택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서울시와 수도권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는 사업절차가 복잡하고 주민의 합의가 어려워 도리어 도심공동화와 슬럼화를 야기한 그간의 전면 재개발 방식이 지역의 다원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중앙집권적 방식이었음을 방증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를 대체할 우리만의 새로운 도시 발전 모델을 아직 찾지 못한 데 있다.

서울시 내 4층 이하 주택 중 70%이상이 지은 지 20년 넘은 노후주택이라고 한다.

서민들의 대표적인 주거양식인 저층주택은 이처럼 특정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이 개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파트에 비해 건축의 단위가 작고 개별적이며 분산적인 개발이 진행되는 저층주거지역은 문화ㆍ복지ㆍ편의시설 보급률이 낮고 공통으로 적용되는 건축의 기준이 부재해 상대적으로 거주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도시의 배후지역으로 방치돼 있었던 저층주거지역을 재생하는 일이 도시디자인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에는 지지부진한 재개발 사업에 한계를 느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상황에 맞는 ‘재생 또는 개발’을 추구한다. 행정부문에선 이러한 주민 주도형 소규모 재건축을 지원하는 형태가 새로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행정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니나다를까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뉴스테이, 재정비리츠 등 정부차원에서 사업의 구도를 모색하고 있는 틈을 타 임대수익과 투자가치를 노린 개발업자들은 벌써 동네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정체성 없는 신축빌라를 빠르게 양산하고 있다.

거주민을 위한 도시재생이라는 본래 목적과 정반대의 현상으로 흘러갈 위험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실질적 방법들을 하나씩 논의하고 단계적으로 실행해야만 한다. 흡사 아파트공화국의 또 다른 형태를 연상시키는 무분별한 거대 빌라촌이 우리 지역의 소중한 개성을 지운 채 매력 없는 우리의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확산되기 전에 말이다. 기존의 주거공동체와 지역특성을 보존하면서 주거환경을 정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가로활성화의 측면과 건물 단위 모두에서 실제 적용이 가능한 건축재생의 기준과 확실한 지원책을 세부적으로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무분별한 주거양식의 난립을 방지해야 한다.

해체되었던 지역성과 공동체 문화로부터 연속성과 관계성을 회복하고 거주민의 자율적 삶과 일상의 가치를 풍요롭게 하는 일은 장기적이며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건축을 통해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공존과 행복을 모색하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개념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적절한 제도적 지원과 균형 속에 정부주도형과 주민주도형의 융·복합적 형태로서 거주민과 행정주체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과 전문성을 가진 민간사업자가 상호 시너지를 발휘하며 만들어가는 행복한 주거문화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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