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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 랩] 말많고 탈많은‘자살보험금’…미지급 규모는 14社 2464억
2001년 재해사망보험 특약 신설
2007년 소송비화…2010년 약관수정
당시 17개보험사 282만건 판매
대법 “시효 지난것 지급안해도 된다”
금감원은 시효에 관계없이 지급하라
일부는 보험금 지급…형평성 논란도


‘자살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최근 ‘자살보험금’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재해나 사고를 보장하기 위해 가입하는 보험의 취지에 비춰볼 때 자살보험금 이라는 이름 자체가 모순이다.

그런데 왜 자살보험금 이라는 말이 생겨 났으며 끝없는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실수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태생적 딜레마=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보험사가 약관의 주계약에 자살 면책기간인 2년이 지난 후에 자살한 경우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을 그대로 재해사망보험 특약에 갖다 붙이면서 생겨난 일이다. 통상 재해사망은 일반사망보다 보험금 액수가 2~3배 많다.

자살은 명백하게 재해가 아님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잘못된 약관을 다른 보험사들도 그대로 베껴 쓰면서 이에 연루된 계약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7년 이 문제로 소송이 제기되자 보험사들은 2010년 4월에서야 약관을 수정했다. 그 때까지 17개 보험사에서 282만 건이 팔렸다. 보험사가 물어야할 액수만 2000억원을 훌쩍 넘겼다.

대법원은 2007년에 이어 올해 5월에도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법정 다툼에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잇달아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자살보험금 문제는 이후 소멸시효 논란으로 번졌다.

보험사들이 일반사망보험금만 받은 뒤 별도 소송 없이 2년 이상 지났다면 소멸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지급된 자살보험금 규모는 14개 보험사, 1886억원이다. 미지급에 따른 지연이자(578억원)까지 더하면 총 2464억원에 달한다. 이 중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는 81%인 2003억원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이번에는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면죄부에도 더 커진 혼란=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에도 논란은 오히려 더 커지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미지급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보험사에 압박을 가해왔다. 이에 이미 14개 보험사 가운데 7개사는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금감원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해서는 보험업법을 근거로 강력한 행정제재를 가하겠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감독당국의 딜레마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자살보험금 문제는 금융당국도 15년 전 약관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원죄를 안고 있다. 2001년 당시 보험사가 이 약관을 보고했을 때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허가를 내주면서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이를 가져다 쓰게 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대법원이 소멸시효 경과 건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하면서 드러내놓고 보험사를 압박할 수도 없는 처지게 됐다.

보험사 역시 대법원 판결이 났다고 무조건 지급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배임이나 이사의 선관의무 위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지불 했을 경우 이와 유사한 건이 발생했을 때 끝없는 민원과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대로 끝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난 후 손해배상책임 문제를 근거로 소송을 이어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맹은 자살보험금에 연루된 소비자들을 모아 ‘회사는 계약과 관련해 임직원, 보험설계사 및 대리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해 계약자, 피보험자 및 보험수익자에게 발생된 손해에 대해 관계 법률 등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는 약관을 들어 손해배상 즉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보험사는 소멸시효가 지났음에도 보험금을 지급하고 일부 보험사는 지급하지 않을 경우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희라 기자/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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